시진핑, 반부패 이어 ‘탈빈 공정’…헝다그룹 5700억원 화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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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푸젠성 닝더시 서기 시절 곡괭이를 들고 농촌 활동에 나선 시진핑 주석(오른쪽). 시 주석의 저서 『파탈빈곤(擺脫貧困)』에 실린 사진이다.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인 헝다(恒大)가 30억위안(약 5700억원)이란 거액을 한 마을에 쾌척했다. 중국의 최빈곤 지역인 구이저우(貴州)성 다팡(大方)현 주민 18만 명을 3년 안에 가난에서 해방시키겠다며 내놓은 자금이다.

시 주석, 푸젠성 빈곤퇴치 경험 확대
113조원 들여 서민 포용 프로젝트
헝다, 인구 18만 최빈곤 마을 지원
“3000명 고용…3년 내 가난서 해방”

소수민족이 산간농업에 의지해 살고 있는 이 지역을 3년 동안 농·목축업 기지로 탈바꿈시키고 주거·의료·교육 시설을 세워 생활수준을 중국 평균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헝다는 27일 현지에서 대대적인 발대식과 함께 주민 3000명을 고용한다고 발표했다.

 헝다그룹의 통 큰 기부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제창한 ‘탈빈(脫貧)’ 공정에 대기업이 호응한 첫 사례다.

빈곤 퇴치를 뜻하는 ‘탈빈’은 반부패에 이어 중국의 새로운 국가적 프로젝트로 확산될 기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최근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빈곤층을 돕는다는 뜻의 부빈(扶貧)과 탈빈이다.

 시 주석의 목표는 약 7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빈곤 인구를 2020년까지 없애는 것이다. 빈곤인구는 연간 소득 6200위안(약 110만원) 이하 계층을 말한다. 이는 5일부터 시작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될 예정인 13차5개년계획(13·5 계획, 2016년∼20년)의 중요한 목표로도 설정돼 있다.

류용푸(劉永富)국무원 부빈개발판공실 주임은 탈빈곤 예산 총액을 묻는 본지 질문에 “5년간 약 6000억위안(약 113조원)을 투입할 계획으로 각종 금융 지원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답했다.

 시 주석의 의지는 빈곤 인구가 많은 전국 22개 성의 최고지도자인 성 서기들에게 시기별, 내용별로 구체적인 빈곤퇴치 계획서를 제출토록 한 데서 읽을 수 있다.

중국 당 지도부는 여태까지 성별 경제성장률(GDP)을 성 서기 평가의 최우선 잣대로 삼아왔으나 올해부터는 빈곤퇴치 목표 달성 여부로 평가하고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엄중 문책키로 했다.

 시 주석이 이처럼 강한 의지를 보이는 데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집권 초기 반부패 캠페인으로 하늘을 찔렀던 인기가 경기침체 등으로 사그라들자 서민층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민심 동향을 파악한 결과 최근 서민들의 당 지도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시 주석이 지난해 아프리카 방문길에 거액의 경제협력 자금을 내놓았는데 국내에서 ‘가난한 중국 국민은 왜 안돌보나’란 불만도 나왔다”고 말했다.

 또 권력 기반 굳히기에 성공한 시 주석이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 소신을 분명히 펼치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시 주석은 30대 시절인 1980년대 중·후반에 푸젠(福建)성 닝더(寧德)시 서기 시절 오지 마을의 빈곤퇴치에 주력해 성과를 거뒀고 이게 중앙 무대에서도 눈여겨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1992년에 첫 출판한 저서의 이름도 빈곤탈출이란 뜻의 『파탈빈곤(擺脫貧困)』이었다. 빈곤퇴치야말로 시 주석의 ‘초심’이란 의미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연설하며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래 일부가 먼저 잘 살게 되고나면(1단계) 부자들이 나머지를 끌어 올린다(2단계)는 ‘선부론(先富論)’을 따랐다”며 “이제 중국은 1단계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10여 년째 취재중인 미국 언론인은 “성장제일주의를 달려온 궤도를 수정해 사회주의 이념에 보다 충실한 노선으로 전환하려는 신호가 아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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