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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세포 즉시 출동, 교란공작 막고 암세포 소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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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9 면

암 정복은 인류의 영원한 숙원이다. 무려 70여 년이 넘도록 세계 의학 연구는 항암제 개발에 매달렸다. 성과가 나오면서 점차 암 환자의 생존율은 높아졌다. 하지만 부족했다. 부작용은 컸고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 연결고리를 끊는 결과물이 나왔다.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다. 풀리지 않던 해법을 사람의 몸속 면역체계에서 찾았다. 암 치료 패러다임의 혁신이라 할 만하다. 암 전문가들은 면역항암제가 가져다 줄 미래에 주목한다. 가능성과 잠재력 때문이다. 면역항암제는 암 정복을 풀어낼 열쇠로 불린다.


 암 전문가들은 왜 면역항암제에 열광할까. 1943년 최초의 항암제가 개발된 이후 항암제가 개발돼 온 맥락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기존 항암제는 부작용·내성 유발 정체를 잘 모르는 적을 상대하는 군부대가 있다고 하자. 적을 진압하기 위해 폭탄·미사일 같은 화력을 퍼부었다. 하지만 강한 화력 때문에 아군도 큰 피해를 보았다. 승자 없는 전쟁이었다. 1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화학항암제도 이와 비슷하다. 원래는 정상세포보다 분화 속도가 빠른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개발됐지만 분화 속도가 빠른 정상세포도 공격 대상이 됐다. 적군 한 명을 잡는 데 무차별 폭격을 가한 셈이다.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다 보니 구토·탈모 등 부작용이 심했다.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면역력까지 저하시켜 각종 합병증을 유발했다.


 그래서 동원된 것이 게릴라 부대다. 아군 피해를 없애고 적을 집중 타격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아무 때나 동원할 순 없었다. 적이 금방 침투 경로를 파악해 기습을 막아내는 것도 문제였다. 2세대 항암제인 표적항암제 얘기다. 특정 유전자 변이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한 것이다. 열쇠(항암제)는 만들었지만 거꾸로 그에 맞는 자물쇠(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종양세포)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기존의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는 높일 수 있었지만 특정 유전자 이상에 작용하다 보니 개발해야 할 약이 너무 많았다. 약에 내성이 생기는 것도 문제였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기존 항암제는 부작용·내성 등 단점이 있고 특히 적용하는 데도 제한점이 많다”고 말했다.

적군·아군 정확히 식별하는 원리 연구자들은 발상을 전환했다. 누구나 하루에 몇 천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겨도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다 적이 레이더망을 교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작 중요했던 것은 화력보다 피아 식별이었던 셈이다. 실체가 보이니 게임은 의외로 간단해졌다. 면역항암제가 작용하는 원리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면역항암제가 작용하는 원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암이 면역세포인 T세포의 증식·활성화 자체를 교묘하게 막아 생존하는 고리를 끊는 방식이다. 몸속에 암세포가 생기면 면역체계는 암세포 표면에 있는 특이한 단백질인 항원을 인식해 이에 대한 정보를 T세포에 전달한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항원제시세포(APC)다. APC가 암세포의 정보를 자신의 표면에 있는 수용체를 통해 T세포와 만나 전달하면 T세포가 암세포로 이동해 공격한다. APC가 적을 인식하고 군대(T세포)를 출격시키는 셈이다.


 그런데 암세포는 APC가 T세포를 출격시키는 것을 막는다. T세포는 자신의 표면에 있는 CD28수용체와 APC 표면에 위치한 CD80리간드(수용체에 결합하는 물질)를 만나 활성화되는데, T세포의 CD80리간드가 CTLA-4수용체와 만나도록 해 T세포를 억제한다. BMS·오노의 면역항암제 ‘여보이(성분명 이필리무맙)’는 CD80리간드 대신 CTLA-4수용체에 붙어 암세포의 교란을 막아 T세포를 다시 활성화한다.


 다음으로 암세포가 출격한 T세포의 레이더를 교란하는 것을 막아 면역기능을 되찾는 원리다. 암세포는 T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면 T세포에 촉수(리간드)를 뻗는다. 암세포는 표면에 있는 PD-L1, PD-L2 등의 리간드다. T세포 표면의 PD-1수용체에 이 리간드가 결합하면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한다(그래픽 참조). 눈이 머는 셈이다.


 면역항암제는 T세포의 PD-1수용체에 달라붙어 암세포의 회피 기능을 억제한다. MSD의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와 ‘옵디보(니볼루맙)’가 작용하는 원리다. 허 교수는 “면역항암제의 원리가 최근 암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며 “임상 데이터가 아직 많지 않아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항암제의 단점을 상당 부분 보완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암 환자 대부분의 면역력은 정상이지만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며 “이를 바로잡아 암을 치료하는 것이 면역항암제의 원리”라고 설명했다. 

30종 넘는 암 대상 임상시험 면역항암제가 각광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 암 환자의 기대수명을 혁신적으로 연장시켰다. 장기 생존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 교수는 “면역항암제가 나오면서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을 넘어 10년 생존율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기존 치료제와 생존율 그래프 자체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용하기 때문에 화학항암제 같은 부작용이 없다. 셋째로 표적항암제처럼 특정 유전자 변이에 구애받지 않아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이 많다.


 현재 나와 있는 면역항암제는 FDA로부터 처음에는 흑색종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이후 일부는 비소세포폐암으로 대상 질환이 확대됐다. 현재 다른 암에 대한 임상시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표적항암제 옵디보는 폐암·두경부암·간암·위암·식도암·난소암·호지킨림프종 등에 대한 임상시험을, 키트루다의 경우 30가지 이상의 암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거의 모든 암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에이즈 등 여러 질환에 적용 예상 에이즈 등 다른 질환에도 면역항암제 적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암뿐 아니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그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면역항암제와 비슷한 원리를 이용한 암 백신 개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밀라노의 산라파엘과학연구소 연구팀은 T세포를 백혈병 환자 몸에서 추출해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명령하고 증식시킨 뒤 이를 골수이식 환자에게 주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환자들은 14년간 암 재발 없이 건강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약효를 보이는 환자군을 확대해야 하고, 암세포가 면역을 회피하는 방식을 더 찾아야 한다. 미미하지만 자가면역질환 부작용 해결도 과제다.


?이 교수는 “지금은 면역항암제의 여명기로 앞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이 많다”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수많은 임상시험과 연구 성과가 나오면 암 환자가 기존보다 훨씬 오래 생존할 수 있고, 암을 정복하는 시기도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암 생존율을 늘리는 문제보다 오히려 면역항암제 보험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 할지가 전 세계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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