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린 승부사 이정철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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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56) IBK기업은행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는 승부사로 유명하다. 승리를 향한 집념으로 가득찬 그는 '스파르타 훈련'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눈물을 보일 때가 있었다. 통산 3번째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그 순간이었다.

기업은행은 27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NH농협 프로배구 6라운드 홈 경기에서 현대건설을 3-2(25-18 14-25 18-25 25-18 15-10)로 물리쳤다. 19승9패(승점57)가 된 기업은행은 잔여경기에 관계없이 현대건설(17승12패·승점51)을 따돌리고 1위를 확정지었다.

2013-14시즌 이후 3년 만의 통산 세번째 정규시즌 우승이다. 등에 숫자 '3'이 씌여진 티셔츠를 입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만끽했다. 이정철 감독도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쏟아내진 않았지만 눈가는 젖었고, 눈동자는 붉었다.

기대 이상의 선전이었다. 기업은행은 김희진과 맥마혼 주포 두 명을 빼고 싸웠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손가락을 다쳤다. 김희진은 한 달 가까이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맥마혼은 지난 25일 도로공사전에서 부상을 입었다. 예상대로 높이에서 열세를 보이면서 3세트까지 1-2로 뒤졌다. 하지만 4세트 초반 11-0으로 앞서가며 분위기를 탄 기업은행은 5세트에서도 맹공을 펼쳐 마침내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정철 감독은 "창피하다. 방송으로 눈물을 보인 게 다 나갔다"며 머쓱해했다.

-어려운 경기를 이겼다.

"25일 김천에서 도로공사와 5세트 경기를 하고 와서 어려울 것으로 봤다. 어제는 잠깐 연습만 했는데 선수들이 하나가 되서 정규리그 우승을 해냈다. 오늘 경기 내용도 좋았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 패턴 플레이도 좋았다. 너무 흡족하고 기쁘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이정철 감독은 "어젯밤은 잤다기보다는 졸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정아(32점·1경기 개인최다득점)가 맹활약했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이 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을텐데 본인 스스로 경기를 잘 풀어서 대견스럽다. 공격 리듬도 좋았다. 사실 경기 전 이긴다기보다는 선수들에게 '투지에서는 지지 말자. 1점, 1세트를 더 따내자는 마음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세트 흐름도 좋았고, 3세트도 앞서다 역전당했다. 이러면 이러면 숨이 죽는데 선수들 의지가 더 강했다. 현대한테 15-3으로 진 적도 있었지 않나. 오늘은 김사니 토스가 거의 완벽했다. 공격수들의 결정력이 떨어져도 센터 블로킹을 보고 잘 올려줬다. 박정아를 주공격수로 정한 뒤 김유리의 속공과 최은지의 공격까지 잘 살렸다. 게임을 읽는 능력을 잘 발휘했다."

-히든카드 최은지도 통했다.

"그동안 공격 파워는 있는데 우리 팀에서 레프트로 나가려면 박정아의 대각에 서야하기 때문에 수비가 안 되서 넣기 어렵다. 나한테 혼나기도 많이 했는데 어제 고참들하고도 의논을 하면서 믿었다."

-올시즌 고비는.

"초반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외국인 선수 맥마혼의 공격 리듬이 처음에는 안 맞았고, 느린 선수를 살리려고 하다 보니 김희진과 박정아가 짐이 무거웠다. 12연승을 시작할 때 리듬이 좋아서 후반에 떨어질까봐 걱정했는데 부상이 덮쳤다. 가벼운 것도 아니고 큰 부상이었다. 김희진이 합류할텐데 오늘 경기 승리로 외국인 선수 없이도 상대에 대적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난해에도 외국인 선수가 부상일 때 좋은 경기를 했다.

"어제 팀 미팅 때 도로공사의 10연승을 막은 경기(2015년 2월2일·성남) 이야기를 했다. 지난해 외국인 선수(데스티니) 수준이 더 높았는데 빠진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다. '충분히 가능하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당장의 점수를 보면서 열심히 하라'고 했다. 선수들이 위기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만들었다."

-남은 경기 전략은.

"정규시즌 2경기가 남았는데 여유가 있다. 세터 김사니도 상황에 따라서 기용하는 등 선수들을 골고루 투입할 계획이다. 맥마혼은 챔프전에 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무리하기가 어렵다. 과정을 보면서 차분히 생각하겠다."

-올시즌 수훈갑을 꼽으라면.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했지만 한 명을 꼽으라면 김사니다.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고참으로서 무릎도 좋지 않고 연습도 많이 못 하는데 소홀히 훈련하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이 운동할 때 웜업과 스트레칭, 웨이트트레이닝 등 한 시간을 더 운동하고 참여하는데 지겨웠을 것이다. 그걸 잘 참아냈다."

화성=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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