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관계 손상 각오한 중국 "주민 생계 영향줘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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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은 일상적 관계를 맺어온 이웃이지만 결의안이 채택되면 교류에 영향이 생길 것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5일(현지시간)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북·중 관계 손상을 각오하면서 강력 제재에 동참키로 했다는 고심이 읽히는 발언이다.

강력 제재 동참하며 배려도 병행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새로운 결의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을 대화의 길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중국에는 대북제재에 대한 강온 두 갈래의 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 북한 체제를 혼란에 빠뜨리는 건 북한뿐 아니라 중국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국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북 무역이나 원조를 끊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뿌리 깊다.

 반면 북핵 불용 원칙도 분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정권이 핵무장까지 할 경우 가장 곤란해질 나라는 국경을 맞댄 중국이란 것이다. 중국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0여 년간 북핵 문제를 연구해 왔다는 중국 싱크탱크의 한 연구원은 “북한이 핵무장을 할 경우 심각한 위협을 받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새로운 국제질서(신형국제관계) 형성을 주창하고 나선 중국으로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책임과 ▶거듭된 국제사회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란 추가 도발을 감행했고, 이에 따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논의를 공식화했다는 점도 중국의 제재 동참을 이끈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제재안 합의로 압박 전선에 동참하면서도 북한을 배려하는 모습도 잊지 않았다. 왕이 외교부장은 “우리가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비핵화를 명분으로 일상적인 교역, 특히 북한 주민들의 생계까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재안 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생계형 무역 거래 와 원조는 막지 않고 군사용으로 쓰이는 항공유 금수에만 동의했다. 환구시보의 26일자 사설은 더 솔직하게 중국의 고민을 드러냈다.

이 신문은 “중국은 북한 경제 및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한·미·일의 대북제재에 반대하고 핵 개발 저지에 중점을 둔 절충안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선의를 보였다”며 “이번 제재로 북·중 관계에 금이 가는 건 불가피하지만 우호 관계 역시 수호되기 바란다”고 썼다.

 중국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론을 정식 제기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압박에 동참하려는 요구를 받아들였으니 중국의 새로운 접근법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요청한 모양새로도 읽힌다.

왕 부장은 “평화협정 없이는 지속가능한 비핵화도 없다”며 “관련국(북한)의 합당한 우려를 해결해야 비핵화가 달성된다”고 말했다. ‘병행협상론’이 북·미 양측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공정한 해법’이라고도 주장했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하루아침에 나온 제안이 아니라 북핵 문제는 한반도 냉전구조의 청산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중국 정부의 인식을 담은 제안”이라고 해석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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