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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법 앞에 주눅든 혁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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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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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우리들이 왜 우는지 아는가. 그건 국가의 불의와 폭력,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야. 이제 울음을 그쳐….”

우버·에어비앤비 성공하려면
규제 위주 법체계 정비해야

 10대 후반의 남녀 네 명이 악기를 치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총을 든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조용히 가택으로 스며들고 있다. “팀북투는 항상 여기에 있는 거야”라는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들은 붙잡혔다.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 한때 아프리카의 엘도라도였던 이곳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점령됐다.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상징이었지만 각종 규제로 도시로서의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흡연과 음악은 금지되고, 여성은 손이나 발을 보여선 안 된다. 시장을 갈 때는 장갑을 끼고 양말을 신어야 한다. 남자들은 바지가 복숭아 뼈를 덮어선 안 된다. 축구를 해서도 안 된다. 신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농지법을 예로 들어보자.

 임야를 밭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농지법 시행령은 재배할 수 있는 다년생 식물을 규정하고 있다. 목초·종묘·인삼·약초·잔디 및 조림용 묘목·과수·뽕나무·유실수, 그 밖의 생육기간이 2년인 식물의 재배지 등을 농지의 범위로 한정하고 있다. 귀농을 꿈꾸고 농지나 임야를 잘못 건드렸다간 전과자가 될 수 있다. 법 조항의 대부분이 금지와 제한 등이다. ‘~~를 해야 한다’ ‘~~를 해서는 안 된다’. 법 조항의 해석도 애매해 행정부나 수사기관이 손만 대면 처벌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일본의 공장형 농장 등 농업 혁신은 언감생심이다. 농업 혁명을 말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공유경제의 상징인 한국판 우버(자동차 공유)와 에어비앤비(숙박업소 공유)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혁신은 법치를 만나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법조인들은 “규제와 단속 일변도로 돼 있는 입법 체계를 고치지 않고는 혁신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업을 민간 자율에 맡기는 대신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을 묻는 구조인 반면 우리는 징벌을 위한 법 구성이 많다는 것이다.

 당장 우버와 에어비앤비도 현재의 우리 법 체계에선 불법이다. 우버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고,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 앞에서 갈 길을 잃는다. 우버 회사를 통해 100여만원의 요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아파트 경비원은 “운송을 대가로 허가받지 않은 운송사업자와 운수종사자가 부정한 금품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며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오피스텔을 여행객에게 빌려주고 하루에 10만원을 받았던 30대는 “숙박업을 하려는 자는 그 시설 및 설비를 갖추고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어긴 혐의로 벌금 70만원이 부과됐다.

 중고차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헤이딜러는 관련 법 때문에 폐업 위기에 처했고, 자동차 함께 타기의 일종인 쏘카도 법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 강남 일대의 콜버스도 한때 위법 논란이 있었지만 여론의 눈초리 때문인지 어렵게 시행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 740건 중 98.5%가량이 규제 법률안이라고 한다. 민간 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위한 법보다는 이들을 옭죄고 단속하는 법만 만들어진 셈이다. 이러고도 혁신을 얘기할 수 있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왕조 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법치 풍조와 민족성 등을 운운하지만 이는 서글픈 분석이다.

 최근 발간된 ‘유엔미래보고서 2050’에서 ‘비트네이션(bitnation)’과 ‘스타트업 국가’의 개념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뢰를 잃은 기존의 국가와 정부를 대신해 비트코인 기반의 화폐체계 등을 사용하는 가상의 시스템인 비트네이션과 스타트업 국가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우리 법의 규제와 단속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까. 이 정부의 창조경제를 불안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