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탐험(7)] 김정은의 권력 해부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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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별군사재판부가 장성택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모습. [사진제공=노동신문]

장성택의 사형 판결문을 보면 석연치 않은 대목이 한 개 발견된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걸음으로 내각총리 지위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꿈을 꾸었다.”

북한에서 내각총리는 힘이 없다. 중국은 총리가 경제를 총괄해야 하는데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당의 계획재정부와 재정경리부가 북한 경제를 관장하고 있다. 내각총리는 노동당에서 정해준 대로 움직일 뿐이다.

장성택은 왜 이런 힘없는 내각총리에 욕심을 냈을까?

장성택은 김일성 시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김일성 시대는 그래도 먹고 살만 했다. 당시 정무원(현재의 내각)이 경제를 이끌었다. 김일-박성철-이종옥 등이 총리를 맡으면서 북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들은 김일성의 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총리의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 힘있게 경제정책을 이끌 수 있었다. 장성택은 그 시절의 총리를 꿈꿨던 것이다.

때문에 장성택은 비대해진 조직지도부와 티격태격 싸우는 것보다 내각을 키워려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비록 자신이 키웠지만 조직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자 2007년 12월 조직지도부 행정부문을 독립시켜 당 행정부로 승격시키고 장성택을 행정부장에 앉혔다.

하지만 권력이란게 한 번 잡으면 더 꽉 잡고 싶은 것이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의도와 달리 자신의 파워를 키우는데 활용했다. 행정부가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부·검찰 등을 관장하면서 노동당에서 가장 강력한 부서가 됐다. 그러자 조직지도부의 견제를 받게 됐고 오히려 자신이 당하는 꼴이 됐다.

조직지도부는 2013년 장성택을 체포하기 전에 김정은을 백두산 삼지연으로 현지지도를 보냈다. 장성택이 김정은에 달려가 사정하면 상황이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지도부는 어린 김정은이 장성택을 보면 마음이 흔들려 결정을 미루거나 오히려 자신들에게 화살이 날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장성택은 처형되기 전까지 김정은을 만나지 못했다. 조직지도부는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대적인 사정 작업을 했다. 그리고 노동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장성택 지우기’를 대대적으로 펼쳤다.

조직지도부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을 공포정치로 몰아갔다. 장성택 처형 이후 숙청·처형된 사람들은 김정은이 한 때 아꼈던 사람들이다. 이영길 총참모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등이다.

북한은 이들의 숙청·처형 원인을 장성택처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한광상, 마원춘은 다시 복원돼 노동신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 시대에 숙청·처형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떤 세력에도 가담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따라서 조직지도부가 제거하기 쉬운 상대들이다. 조직지도부의 방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온갖 명분을 뒤집어 씌워 김정은의 곁을 떠나게 했다.

북한은 올해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목적은 세대교체라고 한다. 이번 세대교체가 김정은, 조직지도부 가운데 어느 쪽을 위한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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