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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조찬기도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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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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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 19일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는 풍자의 고수였다. 멍청한 세상을 꼬집는 것을 신성한 의무처럼 여겼다. 1997년 쓴 ‘죽음에 담담하게 대비하는 방법’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지혜로운 과학자가 우주의 마지막 신비를 밝혀내며, 청렴결백한 정치가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건전한 기업가가 맑은 시냇물을 되돌려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어느 누가 미련 없이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했다.

 지난 16일 선종 7주기를 맞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바보를 자처했다.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도 남겼다. 그는 2007년 그린 자화상 ‘바보야’ 밑에 “안다고 나대고… 대접받길 바라고…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라고 적었다. 이기와 허영의 세상에 대한 매서운 죽비로 다가온다. 그가 눈을 감으며 각막을 나눠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기 기증자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죽음은 모든 종교의 공통 주제다.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설파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어제보다 충실한 오늘을 강조한다. 에코의 비꼼은 종교로도 이어진다. 앞의 글에서 신앙인 역시 죽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라고 놀렸다. “그들은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가능하면 나중에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네 보통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일 터다.

 2016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다음달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이틀 전 기자회견에 따르면 교계·정계 등 각계 인사 3000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의 주제는 ‘통일’과 ‘차세대 육성’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한반도의 위기, 갈수록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젊은이를 위한 지도층의 기도가 잇따른다. 여느 때보다 극도의 불안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다잡아주기를 고대한다. 그런데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부활을 믿는 기독교답게 올해로 48회를 맞는 국가조찬기도회도 이번에 새롭게 태어났으면 한다. 거칠게 요약해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미화(버전 1.0), 이명박 대통령을 무릎 꿇릴 정도의 세력화(버전 2.0) 등을 반성하고 ‘지금, 여기’의 아픔과 함께하는 ‘거듭남의 자리’(버전 3.0)로 업그레이드 됐으면 좋겠다. 아니면 또 그렇고 그런 매머드 이벤트로 끝날 테니까. 예수가 들어주지 못할 만큼 엄청난 소망은 아닐 것 같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