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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장이란 ‘새’는 이제 정부의 ‘새장’을 떠나려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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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우덕 기자 중앙일보 차이나랩 고문/상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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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충격은 컸다.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터진 ‘상하이 증시발(發) 공포’는 신흥국과 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세계 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중국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교역의 5분의 1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도 비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라던 중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양극단은 통한다고 보는 중국
정부 정책으로 시장을 관리·통제
무리한 개입이 시장왜곡 불러
국제화·규모화 진전되면서
시장과 정부 대립으로 경착륙 우려
우리 기업도 중국발 충격 대비해야

1980년대 초 베이징. 거리는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문혁 때 지방으로 쫓겨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이었다. 어떻게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할 것인가. 1978년 말 개혁개방의 기치를 올린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의 선택은 ‘시장(市場)’이었다. 시장의 분배 기능을 경제 운용의 수단(tool)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장에 어느 정도의 자율을 허락해야 할 것인가. 그때 제기된 이론이 ‘조롱(鳥籠)경제론’이었다. “새(鳥)를 새장(籠)에 가둬 키우듯 시장도 정부 정책의 틀 속에 넣어 운용하자”는 이야기였다. 덩의 동료 혁명전사이자 경제 전문가였던 천윈(陳雲)이 제기한 논리였다. 새는 시장을, 새장은 정부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천윈은 “새장이 없으면 새는 날아가버린다”며 “국가가 시장을 틀어쥐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시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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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5년, 개혁개방은 중국을 ‘G2’의 나라로 키웠다. 사영기업이 등장했고,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시도 설립됐다. 역외 위안화 시장도 형성됐다. 새(시장)의 몸집이 커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새는 여전히 새장(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조롱경제’의 속성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몸집이 커진 새, 이를 가둬 키우려는 정부….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게 바로 상하이 증시 폭락이었다.

 복기해보자. 지난 1월 3일 증시 폭락의 직접적인 요인은 8일로 예정됐던 ‘대주주 매각 재허용’ 때문이었다. 대주주들이 주식을 대거 시장에 쏟아낼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퍼지면서 투매로 이어졌다. 6개월 전(2015년 6월) 상하이 증시 폭락 때 시행됐던 증시 안정 대책이 화근이었다. 당시 폭락에 당황한 증권 당국이 내놓은 시장 안정 대책 중 하나가 바로 ‘향후 6개월 동안 대주주(5% 이상의 지분 보유)의 지분 매각 금지’였다. 그 응급 조치가 끝나는 날이 바로 8일이었고, 이게 또 다른 폭락을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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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가가 떨어질 만하면 증시에는 ‘보이는 손’이 여지없이 등장하곤 했다. 지난해 4월엔 인민일보가 “증시 랠리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주식 매입을 부추기기도 했다. 공산당 기관지가 주가 띄우기에 가세한 셈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그때 내버려뒀으면 주가가 연착륙해 지난해 여름 대폭락도, 올 초 폭락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존재’라는 당국의 오만이 증시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중국은 책임을 물어 샤오강(肖鋼) 증권감독위원회 주석을 경질했지만 시장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상하이 증시는 이미 정부가 주가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의 시장이 아니다. 중국 증시의 상장 기업은 2700개가 넘는다. 거래량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공산당 당원 수(약 8500만 명)보다 많은 약 1억 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달려들면서 시장은 투전판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을 핸들링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새는 성장하면 속성상 둥지를 떠나 훨훨 날고 싶어 한다. 증시 역시 정부 개입을 거부하는 속성을 갖는다. ‘과시하는 손(무리한 개입)’은 시장을 왜곡시킬 뿐이다. 그게 주가 폭락의 본질이다.

국제화의 역설

 시장의 범위가 해외로 확대되면 정부 정책은 시장의 공공연한 도전을 받기도 한다. 위안화 환율시장 불안은 그래서 생긴 문제다. 정부의 원래 방침은 점진적인 평가절하였다. 환율은 그 가이드라인 속에서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데 서방 투기세력이 몰려들더니, 홍콩 역외시장에서 위안화 가치가 급락했다. ‘새’가 ‘새장’을 벗어나 날아가려 한 것이다.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보유 달러를 풀어 투기꾼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중국에서 빠져나간 달러는 공식 통계로만 약 995억 달러다. 이 중 상당액이 이 전쟁의 ‘총알’로 쓰였다. 인민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약 3조2000억 달러. 경제가 불안하고 환율 상승(가치 하락) 전망이 지속되면 자금 이탈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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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10조8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이다. 여전히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4%포인트 이상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무역흑자만 약 6000억 달러다. 이런 나라의 통화가 투기세력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홍콩은 중국 국내 시장과는 달리 수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 메커니즘이 통하는 곳이다. 노회한 투기세력이 휘젓고 다닌다. 인민은행은 이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다. 당국은 시장과 소통하는 데 매우 서툴다. 그들은 시장을 통제·관리의 대상이지 소통해야 할 상대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홍콩에 위안화 역외 금융시장을 조성한 건 2010년,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행보였다. 거래 규모는 하루 50억~80억 달러(중국은행 통계)로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 환율시스템 전체를 흔들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위안화 국제화의 초기 단계다. 국제화가 심화될수록 해외시장으로부터의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본유출 통제와 같은 급진적 조치를 취하기도 쉽지 않다. 그동안 공들여 추진해온 국제화의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안화 국제화의 역설이다.

흔들리는 성장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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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들의 독특한 사유(思惟)체계와 연관된 문제다. 궁즉통(窮則通), 그들은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본다. ‘서로 모순된 것도 끝없는 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로 발전한다(正反合)’고 여긴다. 중국의 정신과 서양의 물질은 청(淸)나라 말 ‘중체서용(中體西用)’으로 결합됐고, 마르크스주의도 ‘중국식 사회주의’로 바뀌었다. 중국의 현 정치경제 체제인 ‘사회주의 시장경제’도 서방의 시각으로는 모순돼 보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결합이다. 중국은 이를 ‘두 극단(兩端)의 조화’라고 설명한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두 손 협력(兩手合力)’론으로 이어졌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看不見的手)’과 정부의 ‘보이는 손(看得見的手)’이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다. “시장이 자원배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서도 “시장은 정부의 인도(引導)와 관리·감독(監管)의 범위 내에서만 운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롱경제’ 철학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정부와 시장은 대립이 아닌 보완·발전의 관계다. 그러나 이번 금융시장 사태는 시장이 시진핑 주석의 의도와는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특히 글로벌 금융시장과 연결되면 정부 정책은 공격받을 수도 있다. ‘두 극단의 대립’이다.

 중국 경제시스템은 정부가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성향이 짙다. 강력한 정부가 시장 개혁을 주도했고, 시장은 역동성으로 답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2년 사이 이 구도에 변화가 왔다고 분석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중국 문제 칼럼니스트인 앤드루 브라우니는 “시진핑은 시장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정체상태”라며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개미’ 투자자들은 섣부른 정부 정책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여기고 있고, 해외 투기꾼들은 중국 정부의 실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정책에 대한 신뢰는 중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다. 그 성장 엔진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는 경착륙할 것인가?’ 부동산 버블, 그림자 금융, 설비 과잉, 주가폭락, 환율 불안 등 위기 요소는 많다. 모두 정부의 무리한 정책이 야기한 시장 왜곡에서 비롯된 사안이다. 경착륙 여부는 정부와 시장이 조화롭게 발전할 것이냐, 아니면 충돌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결과를 단언하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경착륙한다면, 그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연초 터진 중국 금융시장 불안은 수출의 2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에도 사활이 걸린 문제다. ‘새와 새장의 게임’의 불똥이 우리 기업에 튀지 않도록 대비하고, 연구해야 할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