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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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비스와봐 쉼보르스카(1923~2012), ‘두 번은 없다’ 중에서

인생에서 낙제란 없는 법
순간의 정성이 중요할 뿐…

요즘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외벽에 걸린 글판을 보신 적이 있는지…. ‘두 번은 없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내가 인용한 구절은 바로 이 시구 다음에 나온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언어, 고전주의 예술 같은 견고한 구조,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매력이다. 전쟁과 갈등의 고단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번뜩이는 생기를 노래해 온 그의 체온이 전해지는 것 같다.

지난해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폴란드, 천 년의 예술’ 특별전을 연 적이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쉼보르스카가 살았던 역사도시 크라쿠프도 찾았다.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던 시인의 육성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매일매일이 같아 보여도 인생에서 두 번 되풀이되는 것은 없다. 순간순간의 정성과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예술도, 역사도 그런 선택이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또 시인은 말한다.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중략)/낙제란 없는 법’이라고,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고. (전문은 joongang.co.kr)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시 전문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07)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