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불가피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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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이래 첫 직권상정 케이스가 발생했다.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 없는 안건의 처리를 극도로 어렵게 하고 있어 19대 국회를 무능·무력한 식물국회로 만든 주범으로 지적돼 왔다.

 정 의장은 “IS(이슬람국가)는 이미 우리나라를 십자군 동맹국, 악마의 연합국으로 지목하며 테러 대상국임을 공언해 왔고 최근 북한은 국가 기간 시설에 대한 테러, 사이버 테러 등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며 “국민 안위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을 국가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국가 비상사태로 본 것이다.

 테러방지법안은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제출한 이래 15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와 폐기, 상정을 반복해 왔다. 유엔은 9·11사건 이후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공조를 결의하고 이를 위한 법령 제정을 각국에 권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 상태다.

 그동안 국가정보기관의 권한 확대가 인권 훼손, 시민의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야당이 반대해 온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해 파리 테러에서 보듯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기술적으로 첨단화하며 잔혹성이 더해가는 사악한 집단의 조직적 테러를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다.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용의자에 대한 정보수집권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는 것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두는 등의 제동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국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감시는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 권력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기에 자기들이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야당은 오히려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국정원의 정보 능력 향상이라는 관점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유의하면 현실적으로 여야 합의가 불가능한 테러방지법안을 국회의장 책임으로 직권상정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