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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과학수사의 전범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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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신부와 영·유아 등 143명이 폐 손상으로 숨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사망 원인을 놓고 공방이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2006년부터 불거진 의문의 폐질환 논란은 2011년 산모들이 급성 폐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면서 가습기 살균제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살균제를 폐 손상 원인으로 추정한 데 이어 2014년 3월에는 의심사례로 접수된 361건 중 168건에 대해 살균제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의료비 지원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된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대표 8명을 경찰에서 송치받은 뒤 지난달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압수수색 등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이번 수사에 대해 검찰은 “비리 척결도 중요하지만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사건은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100명 넘는 사람이 숨진 상황에서 피해자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관련 업체 처벌도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과징금 5000여만원이 전부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셈이다. 사법 처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를 떠나 피해자와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수사의 핵심은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업체들이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 ▶위험성을 알고도 제조·판매했는지다. 인과관계 성립 여부를 놓고 업체들은 “극히 낮은 농도의 독성을 흡입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고, 쥐를 이용한 질병관리본부 실험 결과를 사람과 연결시키는 건 곤란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검찰은 기존 실험 결과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검찰은 유무죄나 살인죄 적용 등 결론을 미리 내리지 말고 인과관계와 사전 인지 등 실체적 진실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검찰의 과학수사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