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규제와 집단 이기주의에 막힌 신산업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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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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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지난해 한국의 수출 규모는 비록 감소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한 결과 세계 6위에 올랐다. 지난해 말에는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과 개혁의 성과 등이 반영돼 국가신용등급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예전 같았으면 커다란 감동으로 들렸을 이 같은 소식이 별 감흥 없이 지나갔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그다지 희망적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올 초 열린 다보스포럼에선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규정할 정도다. 무인자동차·드론·원격진료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IT발(發) 혁신이 산업·금융·유통·의료 등 모든 분야에 파급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이런 글로벌 트랜드를 반영해 3년 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창조경제 정책이 추진됐다. 창조경제란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상품이나 새로운 기술, 서비스 등 창의와 혁신에 의해 한국 경제가 성장해 가야 함을 말한다. 선진국형 경제 진입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처럼 선진국이 이미 개발해 놓은 상품을 값싸게 생산해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 갈 신산업의 발전이 기존의 규제와 이익집단의 저항에 부딪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원래 IT 혁신 등에 의한 신산업 출현은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면서 기존 산업과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새로운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적응을 위한 속도 조절이나 적응 훈련을 위한 지원이 일부 필요하겠으나, 집단이기주의에서 나오는 거부와 저항은 한국 경제의 장래를 위해 자제돼야 한다.

 IT화 초기에는 기기 중심의 하드웨어적 발전을 보여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기존 산업 내 이익 집단의 반대 등으로 산업과 IT와의 융합이 원활히 추진되지 않음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원격진료의 예에서 보듯이 IT와 의료서비스 수준은 각각 세계 선두에 서 있으나 이권 다툼 등으로 인해 양자 간의 융합이 지연되고 있다.

 창조경제가 추진된 후 1년이 지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도입됐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일탈된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한 시장경제 확립,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혁신경제, 양극화 시정을 위한 균형경제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개혁·노동개혁·금융개혁·교육개혁의 4대 개혁에 집중했다. 그러나 입법화가 지연되는 등 정치가 경제발전을 선도해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라는 건축물은 홀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라는 지반 위에 서 있다. 경제개혁이라는 보수공사가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협력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 개혁은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 힘을 모아 도와줘야 할 것이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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