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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3년 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대책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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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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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풍현
KAIST 원자력학회장 교수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다양한 위기의 경고음이 요란하다. 위기를 과장해서는 안 되지만, 간과하면 위기의 기회요소를 놓치게 된다. 위기(危機)는 기회(機會)의 다른 이름이다. 세계 원자력 발전사, 특히 한국 원자력 발전사는 위기에서 기회를 발굴한 성취의 역사다.

 원자력발전은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모색한 데서 시작됐다. 한국이 원자력발전을 전격 도입한 배경도 한국전의 상흔을 딛고 경제도약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는 특히 세계 원자력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발전했다. 1978년 한국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 상업발전 직후 미국 쓰리마일(TMI) 사고로 강화된 원자력 안전의식과 방어체계의 수혜를 봤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세계 원전시장이 위축됐을 때, 유리한 조건으로 원전기술을 도입했다. 한국이 원전가동 38년 만에 기술자립과 세계 최초로 한국형 원전, 연구용 원자로, 중소형 원자로 등 3종을 모두 수출한 원동력이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는 새로운 기회와 위기 앞에 섰다. 지난해 말 한국을 비롯한 세계 196개 나라가 합의한 새 기후변화협약인 파리협정으로 원자력은 유례없는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당장 몇 년 뒤 한국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수용 한계에 도달하는 게 당면한 위기다. 이대로 두면 원전 가동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장기적으로 최종처분해야겠지만, 그 이전 단계로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간저장시설 부지선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2019년이면 월성원전의 부지내 건식저장시설은 포화된다. 불가피하게 부지내 단기저장시설 확충이 시급하다.

그러나 아직 정부의 관리 대책이 확정돼있지 않다. 법적 기반도 없고 규제절차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 서둘러도 간신히 포화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사정이 급박하다. 원자력학회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비전공자들의 공포감은 이해하지만, 과도한 위험인식이 현실적 대안은 아니다.

일본에는 현재 가동 가능한 원전이 43기가 있고, 중국은 30기의 원전을 운영 중이며 24기를 건설 중이다. 2030년까지 110기 이상의 원전을 가동해 99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미국을 앞서겠다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십수년내에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반경 2000㎞ 이내에 한중일 삼국이 약 200기의 원전을 가동하게 된다.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우리나라가 탈핵을 선언한다고 해도 원자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기술력을 토대로 원자력의 안전관리를 위한 동아시아 공동의 노력을 견인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이다.

 1986년 중·저준위 처분시설 부지선정을 추진하기 시작한 후 작년 방폐장 준공까지 30년이 걸렸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추진한 지도 올해로 32년째를 맞지만, 아직 관리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현실에 우리 모두 심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당면과제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조속히 발표하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지금이 위기와 기회를 가르는 결정적 전기다.

성풍현 KAIST 원자력학회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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