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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규정 없어 사업 못하는 ‘무규제의 역설’ 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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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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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자동차, 항공 산업에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다.무게를 줄이는 동시에 안전성과 연비를 높이자는 아이디어다. 그 중심에 ‘탄소섬유’가 있다.

 철(鐵)이라는 군살은 쏙 빼고 탄소섬유라는 튼튼한 강골을 유지하면 가능해 진다. 무게는 철의 4분의 1, 강도는 10배라 한다. 140여년 전 에디슨이 대나무를 탄화시킨 필라멘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크릴 섬유를 탄화시켜 만들어 낸 것이 탄소섬유다. 지금은 의족, 악기, 노트북케이스부터 우주항공,방위산업, 건축까지 널리 응용되고 있다.

 꿈의 신소재라지만 우리의 제도는 아직 미흡하다. 전라북도 완주에 공장을 둔 한 소재기업은 CNG(압축천연가스) 운반 용기를 탄소섬유로 만들어 가볍고 더 안전한 제품을 출시하려 했지만 이내 사업화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반 용기의 재질을 정해놓은 규정에 ‘강철’만 있고 ‘탄소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규제 조항이 없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無)규제의 역설’의 상당수는 포지티브 규제 틀 때문에 발생한다. ‘정해진 것만 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업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제개혁 선진국이라는 미국, 영국에 이어 지난해 중국도 ‘정해진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틀로 바꿨다. 신시장 선점 경쟁에서 우리는 출발선부터 뒤처져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 “기업은 100마일의 속도로 달리는데 제도는 30마일”이라는 엘빈 토플러의 말이 들어맞는 대목이다.

 다행히도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17일 열린 무역투자 진흥회의에서 무규제의 역설을 깰 만한 의미있는 발표가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심사’를 통해 신산업 투자애로로 접수된 모든 규제를 원칙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제도 공백으로 인한 투자 애로를 메워 주겠다는 것이다. 또 신제품의 빠른 출시를 위해 시장진입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물론 앞서 얘기한 탄소섬유에 대해서도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국회도 힘을 보탰으면 한다.

 지난 2014년 발의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에는 포지티브 규제의 네거티브화, 그리고 규제를 푼 공무원에 모든 감사 면책 등 규제 프레임을 원천적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다수 담겨 있지만, 장기간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여야의 이견이 크지 않은 만큼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기필코 통과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1971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가 양산됐지만 ‘돈 먹는 벌레’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복잡한 공정으로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때부터 탄소섬유 육성에 들어가 현재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지금이 정부·국회·경제계가 머리를 맞대고 무규제의 역설을 깰 절호의 기회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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