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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노다지 약물’ 탄광에서 찾는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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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갱도 내부처럼 극한의 환경에서 사는 유기물은 생존을 위해 강력한 대응기제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켄터키 동부에 위치한 매트릭스 에너지 탄광 1호는 최대 약 11㎞까지 내려가는 갱도를 갖고 있다. 작업이 진행 중인 탄광의 어두운 내부로 인도하는 선로 위를 작은 채굴 차량이 덜컥거리며 지나간다. 2004년 개발이 시작된 이 탄광에서는 매일 4500t의 석탄이 채굴된다. 그러나 켄터키대학 약학 교수이자 제약연구혁신센터 원장 존 토슨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화석화된 탄소가 아니라 탄광의 암석과 토양이다. 암석과 토양에는 진정한 미래 가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토슨 교수는 블록버스터 약물을 찾기 위해 탐색 중이다.

지구상 가장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미생물 이용하면 치명적 질병의 치료법 찾을 수 있어

자연 의학은 종종 고대문명처럼 여겨지거나 유명 연예인이 좋아한다는 별 근거 없는 대체 치료법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러나 식물과 토양, 바다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은 박테리아 감염부터 말라리아, 고 콜레스테롤,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의 의학적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중에 출시된 약 화합물 중에는 천연물질을 구조적 기반이나 원료로 삼은 약물이 절반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다가 아직 미지의 영역도 풍부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박테리아는 전체의 1%, 곰팡이는 전체의 5%만이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인류를 병들게 하는 모든 원인에는 자연물질이 연관됐다는 뜻이다.

6300여 종이 존재하는 켄터키 애팔래치아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핫스팟’이기 때문에 발굴을 시작하기에 좋다. 전 세계를 보더라도 애팔래치아 지역만큼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 숲은 중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유기체를 찾는 것만으로 (이곳에) 남은 인생 전부를 바쳐야 할 정도”라고 토슨 교수는 말했다. 그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 엄청난 치료물질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과학자들은 주로 ‘극한성생물(extremophiles)’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간다. 극한성생물은 고온 또는 고압 등 대부분의 생명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하는 유기 생명체를 말한다. 매트릭스 탄광 바닥처럼 혹독한 환경에서는 자연 빛이 들어오지 않거나 생명체를 유지하는 영양소가 제한된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그곳에 사는 극한성생물(토슨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이국적 미생물’)은 생존에 필요한 특징을 개발해야만 한다. 이런 극단의 특질을 보유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배출하는 화학물질을 분석하다 보면 이를 인류에 유익하게 쓸 수 있는 방안 또한 개발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비타민이나 단당, 아미노산 같은 1차 대사물을 배출한다. 이 대사물질들은 유기물 세포 속에서 끊임없이 수행되는 화학적 변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1차 대사물질은 생명체의 정상적 성장과 발달, 생식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토슨 교수는 1차 대사물에도 관심이 많다. 2차 대사물은 유기체가 어떤 방향을 쳐다보거나 적을 물리치기 위해 독소를 배출하는 등 거의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독특한 화합물이다. 극한성생물이 가진 미세 유기체가 슈퍼맨과 같은 영웅이라면 2차 대사물질은 이들에게 초능력을 준다.

귀중한 극한성생물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1995년에 연구진은 몬태나 뷰트에 위치한 개방형 구리 광산의 깊고 버려진 공간에서 균류를 채집했다. 산도가 높고 중금속 폐기물이 가득 찬 유독성 쓰레기 물구덩이에서 채집한 곰팡이였다. 곰팡이 안에서는 아주 귀중한 화합물이 발견됐고, 연구진은 발견 결과를 20개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당시 발견 물질 중에는 백혈병이나 흑색종 암세포, 비소세포 폐암의 발생 경로를 억제하는 분자가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염증 유발을 제어하거나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진 황색포도상구균 등 특정 박테리아를 없애주는 물질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중국과학원 곤명 식물연구소 연구진이 주석 탄광의 하수가 흘러가는 곳에서 항균 특성을 가진 나프토스피로논(naphthospironone) A 등 완전히 새로운 분자를 분리해 내는 성과를 거뒀다.

토양 미생물에서 발견된 2차 대사물이 없다면 블레오마이신과 독소루비신 등의 안정적 항암제를 개발하지 못 했을뿐만 아니라 에리트로마이신과 같은 항생제, 암포테리신 B와 같은 항균 치료법도 우리 곁에 없었을 것이다. 식물(코카 식물에서 분리한 코카인)이나 동물(복어와 도롱뇽에서 발견된 항균물질 테트로도톡신), 곰팡이(페니실린)에서도 2차 대사물은 발견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골프장 토양 샘플에서 화합물을 분리한 2명의 연구원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 물질은 기생충 감염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약물 애버멕틴으로 개발됐다. 이렇게 개발된 약물의 파생물질은 상피병과 사상충증 발생을 낮추는데 기여한다.

2012년 켄터키에서 샘플 테스트를 시작한 토슨 교수는 지금까지 약 200개의 분자를 발견했다. 약물 개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들이다. 그의 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찾아낸 분자 중에는 암 발병 이후 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단백질 4EBP1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암세포 성장을 계속 억제하도록 돕는 것도 있다. 연구실에서는 강력한 항생제 개발 후보물질도 발견했다. 황색 포도상구균을 비롯한 여러 염증 치료제로 큐비신과 나란히 시판 중인 뎁토마이신을 4~8배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효소도 분리했다.

토슨 교수는 암석 파쇄기와 대형 해머 예산 승인을 요청했을 때 켄터키 대학 당국이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내 지질학자들은 소식을 듣고 프로젝트 참여를 간절히 원했다. 리처드 바워삭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낚시 탐사와도 같다”며 프로젝트 참여로 자신의 작업 또한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지질학자들은 자체적으로 탄광을 탐사하면서 드릴로 약 30m를 파고 내려갈 때마다 샘플을 채취해 토슨 교수에게 줬다. 덕분에 토슨 연구소는 최대 지하 1.4㎞에 있는 표본을 전달받았다.

토슨 연구팀은 탄광 아래로 깊이 내려갈수록 흥미로운 분자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탐사 부근 일대가 아주 오래 전 바다여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염분 함량이 높아지는 게 원인일 수 있다. 연구실에서는 바닷물보다 염분이 10배 높은 표본을 테스트한 적도 있다. 또한 석탄 연소장의 경우 온도가 500도까지 상승하는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생물과 가능성이 높은 분자가 더 많이 발견된다. 신경보호 효과가 있어 장기 알코올성 손상을 치료할 때 유용한 분자가 이곳 박테리아에서 분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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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만 탄광 고용률은 16% 가까이 감소했다. 화석 에너지 비중을 줄이는 국가와 주 정부 또한 갈수록 증가 추세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과학은 치유력을 가진 2차 대사물질을 발견하려 노력해 왔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2600년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길다. 그러나 이 분야가 폭발적 성장을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실제로 1990년대 제약사들은 자연물질 개발을 중단하려 했다. 수익을 얻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순전히 운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자연 화합물을 분석하는 연구실 장비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동일한 분자만 계속 발견되다 보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코그노젠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최고과학총괄자 리처드 발츠는 말했다. “발견하기 쉬운 모든 물질은 이미 발견이 완료된 상태였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게놈 시퀀싱(genome sequencing)의 비용이 절감되는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대 제약사 사이에서 자연물질 개발에 대한 흥미가 커졌다. 토슨 교수의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실험실에서 DNA 시퀀싱 기술을 사용하면서부터는 수천 개의 분자 중 가장 흥미로운 성질을 가진 것을 분리할 수 있게 됐다. 토양 1g에 미생물 수백만 개가 들어있고, 미생물 한 개당 수십만 개의 대사 물질이 발견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아주 중요한 발전이다. 기술 개발 덕분에 제약업계는 자연물질 발견에 있어 황금시대로 나아가게 됐다고 발츠는 말했다. “항균, 항진균, 항암 치료에 있어 제약업계 전체가 부흥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약업계는 훨훨 날 지 모른다. 그러나 켄터키 석탄시장은 크게 흔들리며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2013년에만 탄광 고용률은 16% 가까이 감소했다. 화석 에너지 비중을 줄이는 국가와 주 정부 또한 갈수록 증가 추세다. 지난 1월 15일, 미국 내무부의 샐리 쥬얼은 공유지 탄광 개발권을 정부가 더 이상 승인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석탄 채굴을 감축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토슨 교수의 작업은 탄광 산업에 서광을 비춘다. “탄광에서 발견된 물질이 향후 수입을 창출한다면, 일정 지분을 탄광 소유주와 지역사회에 돌려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매트릭스 탄광 운영업체 부스 에너지의 사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인 폴 호른은 천연약물 개발이 장기적으로 채굴을 계속할 이유가 돼줄 지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연구자라도 탄광을 이용해 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석탄은 나쁘거나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이들의 깔끔한 연구분야가 고맙다”고 그는 말했다. “치료제 개발 과정을 돕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나?”

– 제시카 퍼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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