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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원유철·이종걸·안철수 유창한 연설 비밀은?…바로 ‘이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의 달인’으로 불립니다. 원고도 없이 수십분에 달하는 연설을 ‘술술~’ 풀어내죠. 멋들어진 포즈도 곁들여집니다.

역시 미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그 긴 원고를 다 외울 정도의 ‘머리’가 있어야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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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장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의 달인’이 된 데는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텔레 프롬프터’ 덕분입니다. 연단 좌·우에 설치한 투명한 액정 모니터 두 대에서 동시에 흘러 나오는 문장을 ‘실시간으로 읽는 것'이었습니다. TV 중계 화면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원고를 통째로 외워 청중과 눈을 맞추며 연설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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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을 '연설의 달인'으로 만들어준 텔레 프롬프터.

오바마 대통령의 ‘비밀무기’는 우리 정치권에서도 ‘Must Have’ 아이템이 됐습니다.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을 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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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16일 국회연설 장면. 양옆에 텔레 프롬프터를 설치했다.

 박 대통령은 양옆의 국회의원들을 돌아보며 개성공단 폐쇄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중요한 대목에서는 두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했죠.

이 연설의 비밀 역시 텔레 프롬프터였습니다. 대통령 좌우에 설치된 투명한 판이 보이죠? 이게 ‘명연설’의 비밀입니다. 연설 전 청와대에서는 국회에 ‘대통령 전용’ 프롬프터를 국회 본회의장에 미리 설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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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국회에 미리 설치한 텔레 프롬프터.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기 전날인 15일.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도 박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자신의 연설일(16일)을 박 대통령에게 양보하고 17일에 연설을 했죠. 그런데 두 사람은 연설 일정이 잡히자 상의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멋진 연설을 할 수 있을까…”

두 원내대표의 결론은 ‘텔레 프롬프터’였습니다. 당장 국회 사무처에 요청해 ‘비밀무기’를 하루씩 계약으로 빌렸습니다. 프롬프터 한 세트의 하루 사용료는 70만원. 그리고 지난 주말부터 두 사람은 시간을 정해 몇 시간씩 미리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프롬프터의 위치와 각도를 조금씩 옮겨가면서 눈동자의 위치, 목이 돌아가는 각도까지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화’ 했다고 하네요.

중계 화면에선 여유롭게 의원들을 쳐다보며 유려한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본회의장의 의원들이 아니라 프롬프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보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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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두 원내대표의 연설은 내용에 대한 평가를 빼면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과거 종이에 써온 연설원고를 참고해가며 중간중간 고개를 숙여 연설했던 것과 비교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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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국회 연설.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는 프롬프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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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프롬프터를 썼습니다. 이 덕에 처음부터 결의에 찬 연설이 이어졌죠. 그러다 ‘사고’가 났습니다.

안 대표는 사드(THAAD) 배치와 관련된 대목을 읽어내려가던 중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침묵은 2~3초 이어졌죠. 안 대표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잠시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연설이 끝난 뒤 안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중간에 왜 연설을 멈췄었나요?”

그의 대답은?
“하하. 중간에 프롬프터가 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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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텔레 프롬프터를 사용했다.사진 조문규 기자.

19일 정의당 정진후 원내대표는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프롬프터 사용을 하지 않고 빼곡하게 적은 종이 원고로 대신했죠.

정 원내대표 측에 이유를 물었더니 “본인이 프롬프터보다 종이 원고가 편하다고 해서 이틀전에 프롬프터 사용을 신청했다가 철회했다”고 답했습니다.

국회의 ‘프롬프터 리스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술이 좋게 쓰이는 거 아니냐. 만약에 과거에도 이런 게 있었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말실수는 덜 나왔을 거다. 그런데 사실 가수가 ‘립싱크’를 하는 것처럼 프롬프터는 일종의 ‘화면싱크’인 셈이다.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호소를 하려면 프롬프터는 빼고 제대로 ‘연설 배틀’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강태화·이지상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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