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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7500만원 부회장도 근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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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7500만원의 월급을 받았던 부회장도 근로자로 볼 수 있을까. 동양시멘트의 전직 최고위급 임원들이 “대주주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의 지시를 종속적으로 이행하는 근로자였다”고 주장하며 퇴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양시멘트 이례적 퇴직금 소송
나종규 전 부회장 등 2명 패소
법원 “의사결정권 행사한 임원”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부장 진창수)는 동양시멘트의 이 모씨와 나 모씨가 각각 4억591만원과 5억5095만원의 퇴직금과 임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2012년 3월 동양시멘트 대표이사에 선임된 이씨와 같은 해 9월 부회장으로 영입된 나씨는 2013년 10월에 퇴직했다. 동양그룹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동양시멘트를 포함한 5개 계열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후 회사가 빚을 갚기 위한 회생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들의 퇴직금은 회생채권으로 분류됐다. 회생채권은 무조건 갚아야 하는 공익채권과 달리 회생계획에 따라 일부만 갚거나 전부 탕감받을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

법상 근로자들의 월급·퇴직금은 공익채권이지만 경영에 책임이 있는 임원의 월급·퇴직금은 회생채권으로 분류된다. 이후 회생계획이 확정됐고 퇴직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된 이씨와 나씨는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와 나씨는 자신들이 회사경영에 관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표이사로 등기되고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썼지만 실제 경영상의 판단은 회장이 내리고 자신들은 지시를 따르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대리한 한 변호사는  “회장이 메모지에 금액을 적어주면 그게 자신들의 월급이 될 정도로 권한이 없는 자리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한과 책임을 회사로부터 위임받아 경영상의 판단을 내리는 임원이 아니므로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회사의 인사발령, 임원 보수책정, 조직개편, 예산배정에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이상 임원이 맞다고 봤다. 또 월급이 2900만~3500만원(이씨), 7500만원(나씨)으로 큰 금액이었고 근무시간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던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이들에게는 운전기사, 차량, 골프회원권, 업무추진비 등이 제공됐다. 근로자라기보다는 임원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이사 등 회사 고위임원으로 있었다고 해도 법원이 근로자로 인정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대법원 판례상 근로자 여부는 직함에 관계없이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았느냐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9년 한 식품회사의 대표이사였던 강모씨가 낸 소송에서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었지만 실제 권한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며 근로자로 판단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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