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51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지난 12년간 한국 농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난해 관세화 발표 이후 쌀 시장 전면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어떤 대책이 가능할까.
월간중앙, 영·호남 농촌 이장 인터뷰
FTA 시대, 개방 불가피하지만
소통 없이 내는 일방 대책에 실망
인터넷 유통 등 농민도 자구 노력
사실상 전면개방 시대를 맞아 전남 해남군 산이면 대진마을 김영동(56) 이장과 경남 남해군 삼동면 삼화마을 김성(53) 이장을 최근 영·호남 접경지인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에서 만났다.
- 농업 시장이 이제 사실상 전면 개방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김영동=모든 게 개방돼 들어오는 상황에서 FTA 반대만 할 수 있겠나. 문제는 정부의 후속 대책이 있느냐다. 농업을 길게 멀리 보고 농민과 함께 가려는 의지가 있느냐 다. 그런데 그런 걸 기대할 수 없어 보여 FTA에 반대한다.
▶김성=미국은 국가간 FTA 협상 때 대내·대외 협상을 같이 한다. 대내적으로 정부·의회 대표, 피해자와 이익 집단 대표들이 서로 소통하고 입장을 정리해 대외 협상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전혀 모른다.
- 농업·농촌· 농민을 아우르는 ‘3농(三農)’ 정책의 문제점은.
▶김영동=정부 정책에 핵심인 농민이 빠졌다. 실제 종사자의 피부에 와닿아야 좋은 정책인데 정부 정책은 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장의 소리가 들어가지 않아서다. 소수의 이야기만 듣고 정책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농민들에게는 문제가 없나.
▶김성=농업은 농민 힘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미국 같은 경우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 때 농업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농산물을 개방하면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도 국가가 그런 준비를 하고 개방을 해야 수출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천하장사 이만기(외국)와 유치원생(농민)을 씨름 붙여놓고 이겨보라고 하는 구조다.
- FTA에 따른 피해 대책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한 천문학적 보조금·지원금에 농민들이 안주한 건 아닌가.
▶김영동=김영삼 정부 시절 농업구조개선금 등으로 수십조 원을 지원한 것으로 안다. 그때 ‘다방 농민’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그때 풀었던 돈은 농업 구조 개선이나 대외경쟁력을 높이는데 쓰인 게 아니고 농기계 구입비 지원 등에 쓰였다. 보조금이 아니라 대부분 융자 형태였는데 지금은 빚더미로 남았다.
▶김성=일방적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농민들과 함께 정책을 만들어야 현실이 제대로 반영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헛돈 쓴다.
- 그러면 영호남 농민들은 어떤 자구책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나.
▶김영동=예전에는 배추 농사만 지었지만 지금은 배추를 재배해 김장용으로 절여서 판다. 젊은 농민들은 인터넷 판매망도 구축한다.
▶김성=예전에는 한 두 작물로 농사를 지었다면 지금은 벼·마늘·시금치·참다래·한우·단호박 등 여러 농사를 함께한다. 농한기에는 바다에 가서 굴 작업도 한다. 다른 집에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셈이다.
- 쌀 관세화를 어떻게 보나.
▶김영동=안 하는 게 맞다. 지난해 관세화 발표 이후 쌀값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김성=벼농사 농가 20%만 다른 품목으로 넘어가면 농업 자체가 끝장난다. 5%만 과잉 생산되면 가격은 50% 떨어지는 게 농산물이다.
- 개방시대에 농민·농업·농촌은 어떤 의미인가.
▶김영동=농업이 없으면 인류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그래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김성=모든 병의 70%는 먹는 것에서 온다고 한다. 먹거리는 생명 산업이기 때문에 그 어떤 다른 이유도 필요 없이 지켜야 한다.
광양=위성욱·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18일 발매되는 월간중앙 3월호에 인터뷰 전문(영호남 이장들이 토로한 FTA시대 한국 농촌의 현주소와 생존 해법)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