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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김△△ 서울대 합격’ ‘특목고 00명 합격’ 소외감 주는 현수막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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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이색적인 캠페인이 시작됐습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이 진행하는 ‘나쁜 현수막(플래카드) 찾기’입니다.

시민이 ‘나쁜 현수막’이 붙은 학교·학원의 담벼락·복도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 단체가 이를 교육청에 알려 개선을 요구하겠다는 겁니다.

이 단체가 꼽은 나쁜 현수막은 학교·학원의 입시 실적 홍보물입니다. 명문대·특목고에 진학한 학생 이름, 출신 학교, 사진 등을 담은 것을 말하죠.

송화원 사교육걱정 팀장은 “입시 경쟁과 학벌 의식을 부추기는 동시에 인권을 침해하는 비교육적인 광고를 시민 제보를 통해 없애려는 캠페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매년 대입 전형이 마무리되는 1~2월이면 어김없이 ‘OO고 김△△, 서울대 합격’과 같은 홍보물이 거리 곳곳에 걸립니다.

특목고·자사고·국제중에 이어 몇 년 전엔 유명 사립초등학교 입학생을 적은 현수막마저 등장했습니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독특한 거리 풍경이죠.

그나마 학교 현수막은 감소 추세입니다. 시·도교육청이 수차례 “자제하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죠. 201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다른 학교에 입학하거나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에게 소외감을 준다”고 지적했거든요. 물론 몇몇 학교는 여전히 당국의 눈을 피해 동문회·학부모회 명의로 현수막을 걸곤 합니다.

학원은 보다 노골적입니다. 서울에선 지난해 4월 시의회가 이런 홍보물을 건물에 걸거나 무차별 배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이후 특목고에 입학한 수백 명의 이름을 학원 외벽에 붙였다가 교육청 지적을 받고 내렸던 모 학원은 올해 또 합격생 명단을 걸었더군요. 예견됐던 일이긴 합니다. 뚜렷한 제재 조항이 없어 어긴다 해도 당장 불이익이 따르는 게 아니거든요.

교육계의 광고 규제 주장에 대해 학원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를 감추라는 것”이라고 반발합니다. 대학 진학자 수와 같은 정보는 학부모·학생의 학원 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죠. 명단도 “구체적으로 밝힐수록 낫다”고 합니다. 학부모 검증이 가능해 허위·과장광고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죠.

일리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건물 벽에 명단을 드러내는 방식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건물 앞 모든 행인이 합격자의 세세한 신상을 알고 싶진 않을 겁니다. 상황에 따라 소외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고요.

학원에선 본인 동의를 얻었다고 합니다만 이름과 사진 등 노출된 개인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상담 과정에서 원하는 사람에게 책자 형태로 제공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지난달 학원연합회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에 대해 자정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유학기제를 이용한 왜곡광고를 중단해 달라는 교육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거죠. 합격자 현수막도 학원 스스로 자정에 나서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처럼 대다수 시민의 정서에 어긋나는 현수막을 고집한다면 훨씬 강화된 새로운 규제를 자초할 수도 있으니까요.

천인성 교육팀장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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