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엄마 찾는다고…아빠가 아홉 살 아들을 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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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엄마를 찾는 아들(9)을 살해한 40대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다.

베트남인 아내와 이혼, 정신병 앓아
“내 병 물려받을까봐” 질식시켜 살해

경남 창녕경찰서는 9일 아홉 살 아들을 질식시켜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이모(49)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설날인 8일 오후 3시쯤 자신의 집 작은 방에서 아들에게 수면제를 먹였다. 이후 비닐봉지를 씌운 뒤 질식시켜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는 10년 전 베트남인 아내와 결혼해 아들을 낳은 뒤 4~5년 전께 이혼했다. 이후 어머니·아들과 생활해 왔다. 특별한 직업은 없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어머니는 명절을 보내기 위해 서울에 있는 큰아들 집으로 가 집에는 이씨와 아들만 있었다.

이씨는 8일 점심 식사 후 자신의 정신질환 치료약에 들어 있는 수면제를 골라 아들에게 먹였다. 그 뒤 아들의 얼굴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운 뒤 입과 코를 막아 숨지게 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씨는 경찰에서 “설날 아침부터 아들이 이혼한 아내를 자꾸 찾아 화가 난 데다 내가 앓고 있는 정신질환을 물려받아 나처럼 살게 될까 봐 죽였다”고 진술했다. 이씨도 수면제를 먹고 아들 곁에 잠들었다.

이씨 부자는 이날 오후 3시45분쯤 설을 맞아 인사차 들른 사촌동생에 의해 발견됐다. 사촌동생은 인기척이 없어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간 뒤 이씨가 아들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씨가 복용한 수면제가 소량이어서 아들과 동반자살 하려고 먹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씨 아들의 몸에서는 외견상 구타 흔적이나 상처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경찰은 10일 숨진 아들을 부검해 질식 외에 다른 사인이 있는지도 확인한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동국대 곽대경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모가 자녀 생사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 사건”이라며 “가정 해체에 따른 부담이 계속되면 개인의 고통이 커지는데 이런 비관이 명절이면 더 커져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창녕=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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