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과 흰구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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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호 31면

각자 쓴 복음 춘롄을 바꿔 들고 있는 린바오(왼쪽)와 천추샤.

지난달 밝힌 것처럼 올해 나의 소망은 서화가 혹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썼던 글은 대부분 나와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나 연예계의 작은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사실 글을 쓸 때 등장인물의 지명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톱스타도 좋지만 묵묵히 땅 갈고 김 매는 소시민의 이야기도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린바오(林寶) 아저씨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보다가 홍콩에 사는 80세 사형수가 춘절 기간 동안 ‘복음 춘롄(春聯·설에 복을 기원하며 대문 등에 붙이는 대련)’을 판매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복음 춘롄이라니,이 죄수는 어떻게 기독교를 중국 전통과 연결시키게 된 걸까. 과연 거기엔 어떤 글귀가 쓰여져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결국 나의 발걸음을 홍콩으로 이끌었다.


자고로 홍콩 경찰영화라면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야우마테이(油麻地), 침사추이(尖沙咀), 몽콕(旺角)이다. 사람들이 많아 번잡하고 종종 범죄가 발생하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을 꼽자면 아마 야우마테이일 것이다. 특히 과일 도매시장은 평범한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출입금지구역’이다. 나는 신문에 나온 주소를 보고 평생 처음으로 이 구역에 들어갔다. 명절 분위기가 나는 붉은 춘롄들 가운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린바오 선생은 1994년 스탠리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이다. 감옥에서 24년의 세월을 보냈다. 나는 그가 연예계 소식에 둔감할 거란 생각에 바로 신분을 밝혔다. 나는 가수 천추샤라고 하는데 말레이시아에서 당신을 보러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안’에도 TV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내가 노래 부르고 연기하는 모습도 봤단다. 린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붓을 잡고 ‘임마누엘(以馬內利)’이라고 써서 내게 선물했다. 나도 질세라 성경 시편 23편의 구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福杯滿溢)’를 적어서 그에게 건넸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 한복판에서 서예를 한 건 처음이었다. 허나 두렵다기보단 왠지 시원하고 통쾌한 기분이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린 아저씨는 나를 작업실로 데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초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홍콩에서 사형제가 폐지된 후 종신형으로 변경되었다고. 그 후 특사로 다시 자유를 얻었다고도 했다. 그중 감옥에서 성경을 알게 되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는 부분이 가장 가슴을 울렸다. 기독교 신자로서 느끼는 묘한 동질감 때문일까. 그는 이후 교사 출신인 죄수에게서 서예를 배웠다고 했다. 그리곤 복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춘롄을 선택한 것이다. 회개한 린 아저씨는 종종 정부기관으로부터 강연 초청도 받았다. 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노인의 삶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비록 시간은 촉박했지만 매우 따뜻한 만남이었다. 린 아저씨가 주차장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우리가 걸어가자 길가의 모든 사람들이 린 아저씨와 인사를 나눴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다음에 이곳에서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아저씨 이름을 빌어 목숨을 구해야겠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다시금 통쾌하게 웃었다. 쿠알라룸푸르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창 밖의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헤어질 때 아저씨가 한 말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아들이 세 명 있는데, 큰 아들이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이 노인의 마음 한 구석에 한으로 남았으리라. 그 때는 침묵이 옳다고 생각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한참 후배지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옳았을까. 저 멀리 먹구름과 흰구름이 보였다. 누가 검고 누가 흰지 꼭 끝까지 따져야만 하는 걸까. 부디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사 흙탕물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씻어주시길. 새해에는 한국 독자들과 더욱 활발한 교류를 위해 e메일 주소를 싣는다.?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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