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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말하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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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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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30대가 끝날 무렵 이른바 중년의 위기를 맞았다. 문득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상태가 찾아왔다. 10대에는 일기를, 20대에는 잡지 기사를, 30대에는 소설을 쓰면서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이 없는데 어느 날 한 줄의 문장도 씌어지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선배 작가들의 삶을 점검해 봤다. 대부분의 작가가 젊은 시절 재능을 빛낸 후 마흔 살을 고비로 창작활동을 중단했다. 노년까지 글을 쓰는 작가는 중년 입구에서 어떤 식으로든 ‘트랜스포밍’을 이룬 이들이었다. 그 패턴은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되는 공식 같았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은 ‘발달’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성장함에 따라 성취해야 하는 정신 역량을 출생 직후부터 노년기까지 세밀하게 분류·제시한다. 삶의 매 순간 나이에 맞는 성장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이 나이에 적합한 심리 발달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내면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트라우마에 고착된 무의식, ‘내면 아이’라 불리는 정서적 구멍에 발목 잡혀 어른이 돼서도 아이 같은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변화에 저항하는 둘째 이유는 나르시시즘 때문으로 보인다. 성장기에 많은 것을 성취한 이들은 자신의 멋진 모습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머물고자 애쓴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내면에 억압해 둔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꺼내어 의식 속으로 통합해야 하는데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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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보다 남성이 변화에 소극적인 이유는 그들이 지닌 사회적 기득권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미국의 한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는 ‘농장 주인과 노예의 심리’라는 비유를 제시한다. 노예는 늘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며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지만 농장 주인은 현재의 삶을 공고히 지속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변화에 저항하는 남자는 농장 주인의 입장에 있거나 그런 환상을 품고 있을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성격이란 부모 환경에 맞춰 만들어 가진 생존법일 뿐이다. 중년의 위기는 “유년기에 만들어 가진 채 점검 없이 사용해 온 생존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다. 마흔 안팎에서 정신 기능에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내면 역량의 많은 부분을 사장시킨 채 이후의 삶을 답습과 퇴보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라니, 불만족스러운 삶을 60년쯤 살게 될지도 모른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