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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중국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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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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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중국은 노련하다. 중국 외교는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다. 그 재능은 표변(豹變)이다. 관점과 태도가 빠르게 변화한다. 경중(輕重) 조절은 그 기량이다. 그 순발력은 돌발 상황에서 발휘된다. 표변은 중국 외교의 오랜 지혜다.

대륙과 반도 숙명으로 얽혀
중국, 북한의 가치 포기 안 해
북핵·미사일 ‘이이제이’ 효과
중국의 북한 압박은 미온적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의 실리 잣대 바꿀 것

북한은 영악하다. 북한은 중국의 그런 행태를 예측했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도박이다. 도박의 중국 반응은 표변이다. 변화는 신속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 편에 섰다. 평양 정권의 기대 이상이다. 한국 외교는 곤혹스럽다.

표변의 속성은 예측 파괴다. 지난 3년간 베이징은 평양을 푸대접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단골 구호였다. 시진핑-김정은 회담은 불발 상태다. 그렇다면 북한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단호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런 예측을 깼다. 중국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중국은 안면을 바꿨다. 한·중 관계는 미묘하다.

평양정권의 도발은 진행형이다. 이번엔 장거리 미사일 발사다. 북한은 그 시점을 2월 8~25일 사이로 예고했다. 한·미 양국은 3일 강력한 응징을 다짐했다. 중국 외교도 부산을 떨 것이다. 중국은 유엔의 제재 논의에 참여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북한 압박은 제한적일 것이다.

중국 외교는 이중적 담론에 능숙하다. 중국은 표본겸치(標本兼治)를 내세운다. 그것은 ‘표’(지엽)와 ‘본’(근본)의 교묘한 분리다. 중국은 북한의 핵(비핵화)과 생존(체제 안정) 문제를 나눈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북한 체제의 안정에 직결된다. 그 단선적 판단은 경험과 합리의 산물이다. 중국은 그 선명한 해법을 거부한다. 초점은 나눠지면서 흐려진다. 베이징의 북핵 대응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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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변의 바탕에 냉정한 계산이 있다.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한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교차지점이다. 북한은 미 군사력의 대륙 접근을 차단한다. 첨병과 방어의 완충 역할이다. 북한도 자신의 지정학적 자산을 활용한다. 중국은 그 값을 지불한다. 북한에 석유와 식량을 공급한다. 상부상조의 특수관계다.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반도와 대륙은 숙명으로 얽힌다. 그것은 중국 외교의 본능 속에 있다. 해양세력의 진입 때 후견(後見) 본능은 작동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는 지원군을 보냈다. 6·25 전쟁 때 한·미군은 38선을 넘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군대를 파견했다.

한반도는 중국 역사의 비원(悲願)을 담고 있다. 19세기 말 중국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 그 이후 한반도에서 영향력 복원은 중국 리더십의 과제다. 1940년대 김구 선생의 목표는 임시정부의 격상이다. 하지만 중국 장제스(蔣介石)는 임정을 망명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임정 외교부장 조소앙은 이렇게 분석한다. “일본 패망 뒤 한반도를 중국 아래 두려는 장제스의 욕망 때문이다.” 소년 마오쩌둥은 독서광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글귀가 있다. “슬프다, 중국은 망하고 말 것인가.” 슬픔은 일본 침략, 조선에서 중국의 종주권 상실이다. 마오쩌둥과 장제스는 적대적이다. 하지만 둘의 한반도 열망은 일치한다. 그 유지는 시진핑의 신형대국 야망으로 계승됐다. 중국은 북핵 문제를 그 염원 속에서 처리한다. 미·중 관계의 전략적 틀에서 다룬다.

미국과 중국은 경쟁하면서 대립한다. 남중국해에서 양국의 갈등은 확산된다. 미·일 동맹은 긴밀하다. 그럴수록 북한의 가치는 돋보인다. 북한의 핵무장은 한·미 동맹을 위협한다. 미사일 야심은 미국 본토 타격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분산된다. 남중국해에 대한 미군의 집중도는 떨어진다. 중화(中華)의 대외 억제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다. 그 전통적 수법은 효과적이다. 북한은 중국 앞에서 미국을 견제한다.

김정은 체제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 돌출과 기습은 중국에도 부담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을 달래고 포용한다. 혼을 내면서도 밀어준다. 평양의 핵 야심이 베이징에 이득이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는 실리적이다. 명분에 익숙한 한국과 다르다. 실리의 잣대는 유동적이다. 중국의 변신은 실리에 따라 반복한다. 북한도 중국의 표변에 당했다. 92년 한국과 중국의 정식 외교관계 수립 때다. 북한은 중국의 변화를 혈맹의 배신으로 규정했다.

동북아 정세는 긴박하다. 중국의 잣대는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반전의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는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감은 거칠다. 그 반감은 역설로 작동할 수 있다. 사드 배치가 구체화되면 중국은 달라질 것이다. 실리의 잣대는 흔들린다. 중국은 사드와 북핵의 득실을 새롭게 따질 것이다. 외교 거래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뤄진다. 그 추진력은 우리의 자주안보 의지로 생산된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