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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스물여덟 삶’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뭐였을까 영화 '동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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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에서 배우 강하늘(왼쪽)과 박정민(오른쪽)은 각각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를 연기했다. 형무소에 갇힌 송몽규를 면회 간 윤동주.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친구이자 문학적 라이벌이었다.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국민 애송시라고 해야 할 시인 윤동주(1917∼45)의 대표작인 ‘서시’의 앞 부분이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온몸으로 표현한 윤동주. 그의 길지 않은 삶을 스크린에 복원한 영화 ‘동주’(이준익 감독)가 18일 개봉한다.

지금까지 윤동주에 대한 연구서나 평전은 여러 권 출간됐다. 하지만 그의 삶이 영화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대와 연희전문 시절, 일본 유학,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를 다룬다.

영화는 윤동주 자신의 시선뿐 아니라, 그와 막역했던 고종사촌 형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1917~45) 열사의 눈을 통해 인간 윤동주의 삶을 바라본다.

지난해 영화 ‘사도’(2015)에서 파국으로 치달았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자 관계를 그렸던 이준익(57) 감독은 이번엔 서로 거울 같은 존재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청춘에 초점을 맞춰 비극의 서사를 그려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같은 해 중국 용정에서 태어나 운명처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나란히 삶을 마감했다.

영화는 불나방처럼 항일 투쟁에 몸을 던졌던 송몽규(박정민)와 그의 거침없는 행동이나 용기와 달리 그저 시로서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윤동주(강하늘)의 속마음을 대비해 보여준다.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두드러진 내면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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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동주(왼쪽)와 몽규(가운데)가 함께 문예지를 만드는 장면.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는 윤동주의 눈에 비친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삶을 통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긴 윤동주가 어떤 심정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글을 남겨왔는지를 담담하게 되짚는다.

‘동주’는 6억 원 규모의 저예산 흑백 영화로 제작됐다. 이준익 감독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윤동주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게 소박한 삶을 지향했던 고인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흑백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모습을 흑백 영상으로 재현했다.

윤동주 역을 맡은 드라마 ‘미생’의 스타 강하늘(26)은 지난해 영화 ‘스물’에 출연한 데 이어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tvN)에서 풋풋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순수하고 예민한 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송몽규 역의 박정민(29)은 독립영화 ‘파수꾼’(2011)으로 데뷔한 뒤 영화·드라마를 오가며 연기력을 다져온 신예.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자신을 위험에 내몰면서도, 동주 만큼은 극진히 보살피는 인물로 출연해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다.

두 배우는 마지막 촬영에서 고등형사의 심문을 받던 장면을 찍다가 눈물을 흘렸고, 결국 이를 지켜보던 이준익 감독도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강하늘, 박정민의 혼신의 연기가 압권”이라는 게 이준익 감독의 설명이다.

화려한 액션 등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동주’는 어두운 시대의 한가운데서 “부끄러움 없기를” 소망했던 두 청춘의 삶을 잔잔하게 되살린다. 영화 중간 중간에는 ‘별 헤는 밤’ ‘서시’ 등 윤동주가 남긴 시 열한 편이 강하늘의 목소리로 낭독된다.

시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어두운 시대, 두 청춘의 소망과 고통을 대변하는 듯한 아름다운 싯귀들은 먹먹한 울림으로 가슴을 친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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