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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바이러스 공포 확산…중남미 가톨릭국들 낙태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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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의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콜롬비아 국립보건연구소는 30일(현지시간) 2만 297건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 확진 사례가 보고됐으며, 이 중 임신부 2116명이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아직까지 소두증에 대한 보고는 없지만 보건 당국은 올해 말까지 60만~70만 명이 감염되고 500건에 이르는 소두증 발병 사례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앞으로 6~8개월 임신을 자제하라고 권고했으며 감염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가 서식하는 저지대 병원에 지카 바이러스 감염과 소두증 발병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지카 바이러스 발생이 가장 많은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4월 이후 150만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테말라에서도 100여 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고 현지 언론이 이날 보도했다. 지카 바이러스와 연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질환인 '갈랑-바레 증후군' 사례도 늘고 있다. 갈랑-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이 손상돼 나타나는 신경질환인데, 지카 바이러스 상륙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255명, 콜롬비아에서 41명 등의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

아시아 국가들도 지카 바이러스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열대성 전염병에 취약한 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은 출입국 감시를 강화했다고 현지 언론이 이날 전했다. 태국에서는 중남미를 다녀오지 않은 태국인이 대만에 입국하려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돼 비상이 걸렸다. 중국도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에 대비해 경보 체제를 가동했다.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29일 지카 바이러스를 ‘제4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했다. 제4군 감염병은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했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감염병 또는 국내 유입이 우려되는 해외 유입 감염병을 뜻한다.

지카 바이러스 확산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 브라질·콜롬비아·온두라스·엘살바도르 정부 등이 "2018년까지 임신을 미루라"고 당부했지만, 자라고 있는 태아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며 낙태 논란으로 번졌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중남미 국가들은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성이 음성적으로 낙태 시술을 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신하지 말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모든 짐을 여성이 짊어지라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브라질에선 변호사·과학자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성들에게 낙태를 허가해 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일 긴급위원회를 소집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할지 여부를 검토한다. WHO는 올 연말까지 지카 바이러스가 400만 명 이상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30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대표적인 의학 연구 지원재단인 웰컴트러스트 이사장인 제레미 파라르 옥스퍼드대 교수는 “여러 측면에서 지카 바이러스 사태는 에볼라 대유행보다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2014~2015년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1만 10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에볼라는 대유행 중 치료제가 공급된 데 반해 지카 바이러스의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은 요원하다. 더구나 백신이 개발돼도 임신부를 대상으로 시험해야 해 윤리적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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