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커지는데 묘수 없는 전세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4호 18면

4800여만원. 도시 가구가 1년간 벌어들이는 근로소득과 맞먹는 금액이다. 서울에서 평균 시세의 전세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올해 2년 간의 계약이 끝난 뒤 계속 살기 위해 올려줘야 하는 보증금 인상분이기도 하다. 일해서 번 돈 1년 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야 하는 셈이다.


2년 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억9000여만원이었다. 그새 17% 뛰어 지금은 3억4000여만원. 2014년과 지난해 전셋값이 많이 오르면서 올해 보증금 인상폭이 2012년 이후 가장 크다. 이 기간 소비자 물가가 2% 오르는데 그쳤고 근로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미친 전셋값’이라고 할 만하다.


4800여만원은 정상적으로는 2년간 벌어서 절대로 모을 수 없는 돈이다. 도시 근로자 가구가 한 달 월급에서 생활비·교육비 등으로 쓰고 남는 돈이 108만원이다. 2년간 모으면 2500여만원. 전세가구의 빚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올해 서울에서 13만6000여가구 아파트의 전세계약 만기가 돌아온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월세 10%P 늘고 주택 4만호 사라져전셋집 품귀와 보증금 급등을 일컫는 전세난을 올해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올해 악재란 악재는 온통 전세시장으로 몰린다.


매매를 누르면 전세가 튀어 오르는 것이 주택시장의 풍선효과다. 매매수요가 줄면서 전세수요가 늘어난다. 다음달부터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택 매매수요가 움츠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매매로 가지 못하는 수요는 전세로 가야 한다. 매매를 고려할 만한 수요는 상당한 자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세와 월세 가운데 주거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전세를 선택하게 된다.


금리인상도 매매를 전세로 기울게 한다. 전세보증금 대출은 이자만 갚기 때문에 원금을 같이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보다 훨씬 적다. 지난해 신규 분양 급증도 전세수요를 늘리는 요인이다. 분양 받은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데 걸리는 2년 반 동안 무주택자는 계속 전세를 살아야 한다. 2014년과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된 물량이 8만가구 가량 된다. 예년보다 30% 더 많다.


올해 전셋집 공급은 줄어든다.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2000여가구로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예년에 비하면 충분하지 않다. 2011~2015년 연평균 입주물량이 2만7000여가구다. 이보다 20% 가량 적다.


올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있는 전셋집을 없앤다. 이주민 전세 수요는 늘어난다. 지난해까지 집값 상승세를 타고 재건축·재개발이 활발했다. 사업이 무르익어 올해부터 착공을 위한 철거에 들어가는 구역이 많다. 여기다 재건축·재개발에 활기를 불어넣을 규제 완화가 올해도 잇따르면서 사업이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가 올해 철거돼 멸실될 것으로 예상하는 주택은 4만1000여가구다. 지난해 2만4000여가구보다 60% 급증한다. 2011년 이후 연평균 멸실주택은 2만1000여가구다. 서울 멸실주택이 2010년 1만2000여가구에서 2011년 2만2000여가구로 80% 넘게 늘었다. 멸실 급증으로 기존 재고주택이 크게 줄면서 2011년 전셋값이 서울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이 집계된 2004년 이후 최대인 13% 뛰었다.


집 주인은 좀더 나은 수익을 얻기 위해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면서 전셋집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계약에서 월세 비중이 2년새 22.9%에서 32.9%로 10%포인트 높아졌다. 연간 1만8000가구의 전셋집이 없어지는 셈이다. 경기도 아파트 전셋값 서울의 60%전세는 일부 가수요가 작용하는 매매와 달리 완전 실수요 시장이다. 전세를 앞당겨 구할 수 없고 미룰 수 없다. 살지 않을 집을 전세로 구하지 않는다. 수요-공급 법칙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이처럼 올해 전세시장이 사면초가다. 전세난에 뾰족한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집을 지을 수 없으니 말이다. 정부도 사실상 손을 놓았다. 올해 주요 업무계획에 눈에 띄는 전세난 해결책이 없다. 정부가 손을 댈 때마다 전셋값이 더 올랐으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전세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병법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줄행랑’이다. 전셋값이 싼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지난해 집 문제로 서울을 떠난 사람이 8만4000여명에 달하는데 상당수가 전세난 때문이다. 경기도 아파트 평균 전셋값(2억1000여만원)은 서울의 60% 수준으로 1억5000만원가량 싸다. 전셋값 부담이 40% 줄어드는 셈이니 전세난 걱정을 덜 수 있다.


대신 전셋값보다 더 떨어지는 행복 지수를 감수해야 한다. 행복 전문가들이 꼽는 중요한 행복요인의 하나가 출퇴근 시간이다. 직장에서 집이 멀수록 행복 지수가 낮아진다. 올해 전세 난민의 행렬이 더 길어질 것 같다.


안장원 기자?ahnj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