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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역사와 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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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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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곤룡포를 차려입은 잘생긴 임금이 입술을 빨갛게 물들이며 불닭볶음면을 먹는다. 조선 시대 복장을 한 사내가 실에 매단 닭을 기름 솥에 담갔다가 빼낸다. 영락없는 현대판 치킨의 모습이다. 최근 방영 중인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의 장면들이다. 그런데 두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아 온 세종대왕과 장영실이다. 이 장면은 사극이라는 배경에 현대의 문물들을 입힌 상상의 산물이다. 이로써 두 사람은 역사적 인물이면서 더 이상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사극의 사(史)와 극(劇)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픽션과 팩트를 넘나드는 팩션사극만이 아니다. 비교적 역사 재현에 충실했던 ‘조선왕조실록 500년’이나 ‘용의 눈물’ 같은 정통 사극조차 중요한 고증을 소홀히 했다는 꾸지람을 비켜가지 못했다. 역사와 역사극, 얼핏 유사한 두 단어가 그 내용 또한 똑 닮아있어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압박이 계속 존재해 온 것이다.

 드라마 속 역사의 온전한 보존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극에서 보여주는 생생한 모습은 시청자들의 뇌 속에 단단히 각인된다. 이것이 실제와 다를 경우 ‘역사 왜곡’이라는 불편한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일견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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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러나 역사와 역사극은 그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역사는 개별적 사실을 보편적 사실로 이끌어내고 그를 입증해 가는 과정이다. 반면 역사극은 보편적 사실에 ‘극적 전개’를 더해 시청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지향하는 바는 물론 출발선도 다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은 역사교육이라는 공적 영역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역사극은 시청자들을 역사 담론 해석의 장으로 이끌어낸다. 사극에 재미를 느낀 시청자들은 그 재료인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다. 정조나 세종을 실제보다 더 강력하고 정의롭게 그린 사극을 보고 실제 역사에서는 어땠는지를 찾아보고 비교해 본다. 대중들이 역사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데 사극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는 끊임없는 과거와의 대화’라는 말을 남겼다. 고정되고 정체된 역사는 발전할 수 없다는 얘기다. 포름알데히드 보존액에 역사를 고이 모셔두 는 것은 능동적인 역사 해석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뚜껑을 열어 역사극의 상상력에 맡겨 보는 것이야말로 카가 말했던 끊임없는 역사와의 대화 시도가 아닐까.

윤수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