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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패션의 정치학' 지도자는 어떤 옷을 입어야 신뢰를 주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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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게 패션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며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수단이다. 때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패션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시의 적절한 패션이 연설이나 행동의 진정성을 강조해 주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는(WP)는 27일(현지시간) ‘패션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대선 후보 등 주요 정치인들의 패션과 그 함의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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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사라 페일린의 스팽글 카디건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치렁치렁하고 반짝이는 옷을 입고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기 위해 돌아왔다. WP는 지난 19일 페일린이 트럼프 지지 연설에 입었던 옷에 대해 ‘최악의 옷’이라고 평가했다. 페일린은 그날 바늘 같은 은색 쇠막대기 수백 개가 찰랑거리는 카디건을 입고 연설에 나섰다. 페일린이 손을 들고 액션을 취할 때 마다 바늘이 찰랑거렸다. WP는 페일린의 복장에 대해 “누군가를 지지하는 정치인의 옷은 아니었다”며 “그런 옷은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을 때나 입는 옷”이라고 평가했다.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들이 입는 옷 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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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도널드 트럼프의 번쩍이는 정장

트럼프가 입는 정장은 거의 유니폼이다. 그의 정장은 소매나 통이 넓고 보수적인 스타일이지만 원단 재질 자체는 좋다.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매는 넥타이는 너무 길어서 벨트 아래까지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WP는 “패션은 그것을 소화하는 사람의 우아함과 자신감을 보여주며, 때로는 말보다 더 미묘한 전달력을 가진다”며 “트럼프는 빌딩에 이름을 붙일 정도로 부자지만 패션을 보면 화를 내는 직장 상사가 떠오른다”고 평가했다. 특히 번쩍이는 원단과 관련해서는 “전혀 명품이라 생각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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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버니 샌더스의 헝클어진 패션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의 옷은 너무 크다. 그가 마른 탓도 있겠지만 셔츠가 너무 커서 따로 노는 것 같다. 딱 맞고 점잖으며, 매끄럽기 보다는 어찌 보면 대충 입고 나온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이 그의 소통방식이고 핵심 이미지기도 하다. WP는 “정치 논문을 읽다가 며칠간 옷 갈아 입는 걸 잊어버렸거나 너무 바빠서 이발하는 걸 잊어버린 건 아닌가 싶다”며 “사실 샌더스는 나이든 백인 남성이기에 여성 후보처럼 젊어 보이거나 패셔니스타처럼 보일 필요가 없고, 단정함을 강요 받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보다 패션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정직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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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 릭 샌토럼의 조끼 강박

당시 공화당 경선에 나섰던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주)은 널찍한 회색 조끼를 행운의 부적처럼 여겼다. 초반 조끼를 입고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밋 롬니 후보를 앞섰기 때문이다. 샌토럼은 조끼를 보수의 유니폼으로 삼아 후원금 모금 상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조끼는 아버지 세대의 상징으로 ‘쿨’하지 못했고, 결국 샌토럼은 경선에서 패배했다. WP는 “조끼는 근대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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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힐러리 클린턴의 ‘쌩얼’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방글라데시 출장에서 ‘쌩얼’을 보여줬다. 빨간 립스틱을 조금 바르긴 했지만 대충 흘러내린 머리와 검은 뿔 테 안경은 쌩얼을 그대로 드러냈다. 클린턴은 쌩얼에 대해 질문 받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금에 도달하기 까지 인생에 굉장히 만족한다”고 답했다. WP는 “퍼스트레이디였고 국무장관인 클린턴이 쌩얼로 나온 것이 놀랍지만, 쌩얼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 앞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며 “화장은 여성을 더 돋보이게 하지만, 나이든 민 낯을 드러내는 것은 더 용기 있는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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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힐러리의 긴 머리

당시 62세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2010년 긴 머리스타일을 보여줬다.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의 금발은 꽤 멋졌다. 미국에는 50대가 넘어간 여성은 짧은 헤어스타일이 어울린다는 말이 있는데 클린턴은 그런 편견에 멋지게 한방 먹였다. 그녀를 롤모델로 삼는 수많은 여성들이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흔히 서구권에서 긴 머리는 젊음, 여성, 성적 매력을 상징하고 짧은 머리는 진지함, 강인함을 상징한다. 클린턴의 긴 머리 스타일은 그런 전통적인 생각에 일침을 놓고 나이든 여성도 여성적인 매력을 충분히 발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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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버락 오바마의 엄마 청바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할 때 입은 청바지는 펑퍼짐한 스타일이었다. 밝은 톤의 워싱이 들어간 주름진 청바지는 엄마 스타일의 청바지(mom jeans)라 불릴 만 했다. 위에 걸친 검은색 잠바도 대통령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잠바 안에는 흰색 폴로 셔츠를 입었는데 이런 패션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WP는 “편안한 옷차림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적 활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썩 좋은 패션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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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버락 오바마의 수트

당시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차분하고 깔끔한 블랙 수트를 즐겨 입었다. 다른 정치인들도 정장을 입었지만 흰색 셔츠에 노타이는 그의 건강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오마바의 차별점은 전통적인 수트를 입으면서도 스키니한 스타일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정장을 입은 소년의 모습 같다고 할까. 미국 매체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쿨(cool)’하다고 표현했다. WP는 오바마의 쿨함은 재즈트럼펫 연주자인 마일드 데이비스나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같은 쿨함이라고 평가했다. 1960년대 버전이지만 자신감이 있고 자족적이며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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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존 에드워드의 노동자 스타일

2004년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은 카메라 앞에서 차려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물 빠진 리바이스 청바지에 긴팔 셔츠를 걸치고 스포츠 시계를 찬 모습은 블루컬러 노동자들의 열정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WP는 그의 모습에서 어색함을 찾았다. 상의는 뻣뻣하고 헤어스타일은 너무 고급스럽다는 거다. 캠페인 재정 보고서를 보면 그는 머리를 다듬는 데만 800달러(90만원)을 썼다. WP는 “당장 농장으로 가서 일할 수 있는 농부라기 보다는 자신의 영지를 돌아보는 부농 같은 이미지”라고 평가했다. 백만장자가 짐짓 서민의 삶을 알아보려 코스튬을 한 것 같다는 거다. 대중지 피플이 가장 섹시한 정치인으로 꼽은 그는 매력적인 외모와 뛰어난 대중연설로 주목 받았지만 2008년 경선 과정에서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두고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여성과 불륜을 저질러 퇴진했고 정치계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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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밋 롬니의 앵커 스타일 머리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뉴스 앵커 같은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하다. 바람이 불어 옆 사람의 머리가 다 헝클어져도 그의 머리는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다. 이런 헤어 스타일은 옷차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깔끔한 정장에 단정한 넥타이는 그가 반듯한 사람의 표본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책임감 있고 지적이며 신뢰를 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WP는 “완벽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울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며 “그런 사람이 헝클어진 노동자의 머리가 무엇을 이해하는지 알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도와줄 사람을 원하지 완벽한 앵커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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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존 케리의 나사(NASA) 위생복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004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다. 193㎝의 장신인 그는 남성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어필했다. 하지만 미 항공 우주국 기지에 방문했을 때 하늘색 위생복을 입으며 이미지를 깼다. 수술복 같기도 하고 토끼 옷을 입은 것 같기도 해서다. 케리가 호기심이 많아서 얼마나 웃길지를 고려하지 않고 위생복을 입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력 정치인이 텔레토비처럼 보이는 건 문제가 있다. WP는 “대선 후보라면 보좌관이 상황과 맥락 등 세부적인 것까지 언급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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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하워드 딘의 소매 걷어 붙이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당원대회와 예비선거를 앞두고 큰 인기를 얻었다. 딘은 주먹을 쥔채 팔뚝까지 소매를 걷어 붙이고 연설을 하곤 했다. 사실 민주당에서는 소매를 걷어 붙이는 게 남성 우월적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검정 정장을 유니폼처럼 입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딘은 소매를 걷어 붙인 채 청중을 향해 열정적인 연설을 했고 청중들은 이를 진정성 있는 ‘진짜 남자’라는 이미지로 읽었다. 물론 최종 대선 후보는 존 케리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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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앨 고어의 친환경 복장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는 지구 온난화에 반대하는 환경 전도사로 유명하다. 200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는 당시에도 친환경적인 패션으로 유명했다. 그는 당시 진보적 사회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오미 울프의 조언을 받았는데 울프가 그에게 “갈색이나 올리브색 같은 지구의 색깔과 비슷한 색을 입으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WP는 “정치인에게 패션의 힘을 인식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금요일에 네이비나 회색 옷을 입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걸 매일 입으라고 하면 곤란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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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빌 클린턴의 각선미 돋보이는 조깅 바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조깅으로 유명했다. 조깅은 건강에 좋은 것이지만 때로 대통령이 새하얀 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건 좀 어색할 때가 있다. 스포츠 관점에서 볼 때도 너무 짧은 그의 조깅 바지는 불편해 보인다. 특히 조깅을 하며 국가 대소사를 논의하는 모습은 신뢰를 주기 힘들다. 그는 한국 방문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도 조깅 레이스를 펼쳤었다. WP는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관계를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대통령이라면 문제 해결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1만원짜리 바지를 입은 클린턴이 옆집 이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막다른 길로 조깅하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는 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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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마이클 듀카키스의 탱크 헬멧

1988년 대선에서 조지 WH 부시(아버지 부시)의 상대였던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대선 후보는 안보와 안전 문제에서 부시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는 이를 만회하고자 소련을 공격하는 연설을 하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모방해 탱크에 올라탄 사진을 찍어서 배포했다. 하지만 이는 부시 진영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면허도 없는 운전자가 트럭을 운전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WP는 “정치인이 무엇을 입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듀카키스는 어울리지 않는 탱크 헬멧을 쓴 채 할리우드 세트에 와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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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로널드 레이건만의 스타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갈색 정장에 체크 자켓을 입곤 했다. 여기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거나 가죽 자켓을 걸치고 승마 부츠를 신은 적도 있었다. 이상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잘 소화했다. “최고의 커뮤니케이터”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그는 묘한 설득의 힘이 있었다. 1980년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그는 붉은 계열의 갈색 정장을 즐겨 입었고 취임식에서는 흰색 넥타이를 했다. WP는 “레이건의 스타일은 권위에 속박되지 않았고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줬다”고 평가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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