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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없는 재킷, 핑크색 팬츠 … 성별 허문 스타일 눈에 띄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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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피렌체·파리서 열린 준지·우영미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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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정욱준 디자이너(삼성물산 상무)의 ‘준지?’패션쇼. 영어 접미사 ‘레스(less)’를 주제로 성별과 경계, 형태를 허물어뜨린 의상을 선보였다. 클래식 아이템인 무스탕을 다양하게 변주했다.

패션 세계에서 1월은 고급 남성복의 시간이다. 이맘때면 파리·밀라노·런던·뉴욕 같은 ‘패션 수도’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올 가을·겨울(FW)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잇따라 열린다.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 명품 디자이너들의 잔치다. 빽빽한 쇼 일정 가운데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한국인 디자이너 정욱준의 ‘준지(JUUN.J)’와 우영미의 ‘우영미(WOOYOUNGMI)’. 두 디자이너는 오랜 시간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서왔다.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감성이 제대로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3일 이탈리아 피렌체와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각각 열린 ‘준지’와 ‘우영미’ 패션쇼를 소개한다.

세계 최고 남성복 무대에 오른 ‘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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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준(위 사진) 디자이너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워모’에 게스트 디자이너로 초대돼 패션쇼를 열었다.

지난 13일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스타지오네 레오폴다’. 19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역(驛)이 기차가 멈춘 뒤 행사장으로 바뀐 공간이다. 이곳에서 열린 ‘준지(Juun.J)’ 패션쇼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 700여명이 모였다. 피렌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워모’가 마련한 게스트 디자이너 패션쇼의 주인공이 정욱준 디자이너(삼성물산 상무)였다.

1972년 시작된 피티 워모는 매년 세계 남성복 디자이너 중 한 명을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해 패션쇼를 열어왔다. 겐조·발렌티노·제냐·톰 브라운 등 세계적인 남성복 브랜드가 피티 워모의 게스트 디자이너를 거쳐갔다. 한국인 디자이너로는 정욱준 디자이너가 처음으로 초대됐다. 3~4년간 준지의 컬렉션을 지켜본 뒤 전격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했다고 한다. 해마다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여온 준지는 올해 가을·겨울(FW) 컬렉션을 피티워모에서 공개하게 됐다.

 

성별과 형태, 경계를 허물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피티 워모’는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다. 전세계에서 바이어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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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준지 컬렉션의 주제는 영어 접미사 ‘레스(less)’다. 성별(gender)이나 경계(border), 형태(form)의 제한이 없다는 의미로 기존의 개념을 허물고 새로운 의상을 보여주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정욱준 디자이너는 자신의 주특기인 클래식을 살짝 비트는 ‘클래식의 트위스트’를 이번에도 택했다. 준지는 라이더 재킷과 트렌치 코트 같은 클래식한 아이템을, 소재를 바꾸거나 스타일을 믹스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클래식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새로움이나 독창성을 보여주는 방식을 준지이즘(Juun.Jism)으로도 부른다. 이번 쇼에서는 준지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인 라이더 재킷을 다양한 형태와 길이로 재해석한 40벌의 창의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소매가 없는 슬리브리스, 몸에 꼭 들어맞는 슬림, 크게 입는 오버사이즈, 길이가 짧은 볼레로 스타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가죽 태닝(생가죽을 무두질한 가죽으로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 기법을 활용해 라이더재킷을 다양한 색깔로 선보였다. 등과 소매, 가슴 부위에는 컨셉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새겨넣었다.

특히 섹시 로봇과 누드 일러스트로 유명한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인 소라야마 하지메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피날레가 화제를 모았다. 모델 31명이 금속성 여성 로봇과 공룡 등 일러스트레이트가 그려진 다양한 스타일의 무스탕을 입고 런웨이를 걷자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갤러리 라파예트, 바니스 뉴욕, 색스 피프스 애비뉴의 패션 바이어 등이 속한 객석에서는 “벨리시모(Bellissimo : 매우 아름답다)”가 연신 터져나왔다. 다소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남성용 무스탕에 여성성을 가미한 일러스트를 믹스해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반전의 묘미를 주었다는 평가다.

세계적인 패션 전문지 WWD는 “아시아인으로서의 뿌리와 엄정한 실루엣, 퓨처리스틱한 볼륨, 밀리터리 영감과 파리지앵스러운 코스모폴리탄 정신까지 멋지게 조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더 아름다워진 ‘우영미’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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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프랑스 파리 컬렉션에서 패션쇼를 여는 우영미 디자이너. 이번 시즌 ‘우영미’가 그린 남자는 부 드럽지만 독특하며, 무엇보다 성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23일 파리 시내 중심가에 있는 행사장 ‘파빌리온 깡봉 카파시노’. 미국과 유럽에서 온 전문가 5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영미’ 2016년 가을·겨울(FW) 패션쇼가 열렸다. 미국과 영국의 주요 백화점 7곳의 사장단과 르피가로·보그 같은 유력 매체 기자들이 참석하는 등 성황이었다.

우영미 디자이너는 2002년 본인의 이름을 내건 남성복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로 파리컬렉션에 진출했다. 이후 15년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리 무대에 섰다. 이번 시즌 테마는 ‘겨울 정원’. 다소 기이하고 몽환적인 정원에서 컬렉션이 시작됐다. 이번에 우영미가 그린 남자는 지금까지의 남자와는 달랐다. 몽상적이며 부드러움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기이하고 독특하며, 무엇보다 성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색은 더욱 풍성해졌다. 붉은 계열의 색, 핑크와 빈티지 오렌지 같이 여성스러운 색이 전면에 나섰다. 남성과 여성이 옷장을 공유하고 사용하는듯한 컬렉션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 우영미는 처음으로 여성복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영미는 이번 시즌 남자가 아름답기를 원했다. 군용 와이드 팬츠, 펠트 소재, 코듀로이, 넓게 주름 잡힌 바지를 특유의 아름답고 우아한 테일러링으로 표현하면서도 부드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남자의 옷장 속 클래식한 아이템들은 초현실적인 방향으로 표현돼 다른 모양새를 보여줬다. 숄 카라의 정장 재킷, 풍부한 질감의 벨벳과 스웨이드, 길거나 곱슬거리는 울 소재를 사용해 복고풍 영감을 표현했다. 오버사이즈 버클이 달린 앵클 부츠는 글램록 느낌이었다. 줄무늬와 헤링본 형태에 추상적으로 변형된 꽃 실루엣이 얹혀진 프린트도 선보였다. 셔츠의 커프스와 니트웨어의 소매 등에 백합과 목련, 모란을 그려넣었다. 셔츠에는 프린트, 니트웨어에는 자수, 밍크에서는 패치워크 등 다양한 기법을 썼다.

우영미의 첫 여성 컬렉션은 남자의 옷장에서 빌려온 듯한, 그러나 완벽하게 그녀의 체형에 맞게 변형된 느낌을 줬다. 우영미 브랜드 여성복은 기존의 남성복 컬렉션과 크게 다르거나 독립적이지 않다. 남자의 ‘여자친구’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그’와 ‘그녀’가 같은 사람인 차원이다. 여성인 우영미 디자이너와 정유경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디자인하는, 여성의 터치가 가미된 남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준지·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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