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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겨울 갯벌의 진미, 굴 맛이 꿀맛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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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제철 맞은 서해 갯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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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빠진 간월도 갯벌에 굴밭이 드러났다. 섬 아낙들은 다시 물이 들어올 때까지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굴을 캤다. 굴 맛이 달고 뭉클했다.

뭇 생명이 헐벗고 움츠러드는 한겨울, 굴은 제 살을 한껏 불린다. 겨울 굴의 위대한 맛을 알기에 우리는 겨울이 오면 으레 굴을 찾아 먹었다. 날 것을 초장에 찍어 먹었고, 쌀밥과 함께 쪄 양념장에 비벼 먹었고, 시원하게 국으로도 끓여 먹었다. 이맘때 굴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겨울은 굴을 먹는 계절이다.

절정의 굴 맛을 찾아 서해안을 헤집고 다녔다. 굴을 옆에 끼고 살았다는 카사노바와 나폴레옹이 부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만큼 한겨울 서해안의 굴은 훌륭했다.

간단한 굴 상식부터 일러둔다. 굴은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채취한다. 보통 서해는 자연산 굴, 남해는 양식 굴이라 생각한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서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굴을 양식하고, 남해에서도 갯바위에 붙은 굴을 캐먹는다.

한국의 굴 생산량은 한해 약 29만 t에 달한다. 양식 굴만 계산한 것이다. 자연산 굴은 집계하지 않는다. 양식 굴의 90%는 경상남도에서 난다. 경남에서도 통영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통영에서는 수하식(垂下式)으로 굴을 양식한다. 부표 아래 밧줄에 줄줄이 굴을 매달아 기른다. 내내 바다 속에 잠겨 있으니 플랑크톤을 많이 먹어 굴이 큼직하고 영양가도 높다고 통영에서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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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갯굴은 남해 굴보다 작지만 맛과 향이 진하고 식감이 쫄깃쫄깃하다.


반면에 서해 굴은 갯벌이나 갯바위에서 산다. 그래서 갯굴이라고 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수하식 굴보다 작지만, 입 안에서 씹히는 식감은 더 좋다. 향도 더 진하다. 서해 굴의 맛은 바다가 만든 맛이 아니다. 햇볕과 바람이 만든 맛이다.

서해 굴을 대표하는 지역은 충남의 천수만 일대다. 지난해 천수만에서 생산한 굴은 약 2500t으로 추산한다. 통영 생산량의 1%도 안 된다. 천수만에서 난 굴을 서산 간월도에서는 젓갈을 담가 먹는다. 어리굴젓이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조선시대 진상품이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보령 천북에서는 천수만 굴을 구워 먹는다. 천북은 석화 굴을 직화로 구워먹는 문화의 진원지다.

지난 5~6일 천수만을 찾아갔다. 물 빠진 갯벌에서 꼬부랑 할머니들이 허리 한 번 펼 새도 없이 굴을 캐고 있었다. “이건 중노동이 아니여. 상노동 중에 상노동이여.” 할머니들은 갯벌만 내려보며 건성으로 답을 했다. 갯벌에서 할머니들은 끝내 고개 들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눈앞의 굴 한 알이 더 귀하기 때문이었다. 취재를 마친 뒤 물컹한 굴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 뭉클한 맛이 났다.

보통은 1월 굴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올 겨울은 덜 추워서 2∼3월이 돼야 살이 꽉 차오를 것이라고 한다. 거센 바람 몰아치는 날, 굴을 찾아 서해로 떠나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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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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