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지하철 10대 중 8대 CCTV도 없어…하루 720만 명 ‘트라우마 출퇴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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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직장인 송모(30·여)씨는 지하철을 잘 타지 않는다. 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서다. 지난해 12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부터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 증상이다.

작년 성추행·폭행 등 범죄 3040건
경찰팀 40여 명이 수천 편 관리

송씨는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취객이 뒤에서 갑자기 껴안아 주변에 있던 남성이 제지한 적이 있다. 사람이 없는 시간대엔 지하철을 아예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부 전모(32·여)씨도 지하철 불안감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지하철에서 남편이 자신에게 외투를 덮어주고 다리에 손을 얹었는데 한 취객이 “여자 다리 닳겠다”면서 시비를 걸어온 뒤부터 생긴 현상이다.

전씨는 “결국 경찰이 출동까지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하철을 타는데 탈 때마다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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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평균 720만 명(2014년 기준)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송씨와 전씨처럼 지하철에서 성추행이나 폭언·폭행을 겪은 뒤 “지하철 타기가 무섭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지난 26일 노숙인 강모(51)씨가 지하철 전동차 내에서 25㎝ 길이의 흉기를 휘두른 일까지 벌어졌다. 지하철 내 강력사건이나 테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에는 조모(73)씨가 지하철 3호선 전동차 안에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일도 있었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접수된 지하철 내 범죄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2년에는 1566건에서 지난해 3040건으로 3년 새 두 배로 불어났다.

이에 대처할 지하철경찰대 인원은 152명(행정요원 제외)이다. 이들은 순찰팀 72명과 수사팀 80명으로 나뉘어 각각 3, 4교대로 근무한다. 사실상 순찰팀 40여 명만이 매일 서울 내 357개 역과 수천 편의 열차를 모두 관리하는 셈이다.

서울메트로는 2~3명씩 조를 짜 역내와 전동차를 순찰하는 85명의 지하철보안관을 두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지하철보안관에게는 사법권이 없다. 폭행·성추행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를 붙잡아 놓고 경찰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역사와 열차 내 폐쇄회로TV(CCTV)도 문제다. 지하철 1~4호선은 전체 차량의 18.2%(356량)에만 CCTV가 설치돼 있다. 서울을 오가는 지하철 10대 중 8대 꼴로 CCTV가 없다는 의미다.

26일 흉기 난동 사건이 난 전동차에도 CCTV가 없었다. 설치된 CCTV는 대개 40만 화소 수준이며 화면 저장 기간도 짧게는 7일에 불과해 경찰이 수사용으로 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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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CCTV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범법자들을 위축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융합보안학과 김학경 교수는 “영국처럼 지하철에서 정복 입고 순찰하는 경찰 인력을 많이 둘 필요가 있다.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데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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