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의 역설…빈자가 부자, 젊은층이 고령 후보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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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외견상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후보와 유권자층이 짝을 이루는 ‘거꾸로 지지’가 신조류로 등장했다. 최고령 후보인 75세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젊은 세대가 환호하고, 최고 부자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백인 저소득층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무소속 샌더스 의원은 당선되면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갈아 치운다. 고령에도 샌더스 의원은 젊은 층의 폭발적 지지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위협하고 있다.

폭스뉴스가 25일(현지시간) 공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샌더스 의원은 45세 미만 응답자에서 초강세다. 이 그룹에서 샌더스 의원은 58%를 얻어 클린턴 전 장관의 32%를 크게 앞섰다.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샌더스 의원(37%)은 클린턴 전 장관(49%)을 12% 포인트 차이로 따라 붙었다. 지난해 6월 샌더스 의원이 클린턴 전 장관에 46% 포인트 뒤졌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대폭 줄었다.

같은 조사에서 트럼프는 저학력ㆍ저소득층이 주요 지지세력임이 재확인됐다. 트럼프는 공화당내 선두로 소득ㆍ학력ㆍ연령 모든 기준에서 경쟁 후보들을 앞서지만 특히 저학력ㆍ저소득층에서 강세다. 트럼프는 응답자 중 연소득 5만 달러(6000만원) 이상(33%) 보다 5만 달러 미만(37%)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트럼프는 대졸 이상 응답자에선 29%의 지지를 확보했지만 대졸 미만 응답자들에선 38%로 학력이 낮을수록 지지세가 늘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고학력 상류 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다. 금으로 내부를 치장한 보잉 전용기를 타고 유세장을 날아 다니는 트럼프는 지난해 7월 “내 재산은 100억 달러(12조원) 이상”이라고 자랑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트럼프를 놓고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은 “와튼 스쿨 졸업을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고 전했다.

샌더스는 비판 의식이 강한 젊은 세대를,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로부터 무시당한다고 느낀 백인층을 선명한 단순 화법으로 파고 들며 지지를 확보했다. 샌더스 의원은 ‘1% 부자 대 99%로 갈리는 미국’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학교 무상 등록금, 부자 증세, 대형 금융업체 제재를 약속하며 기성 세대보다 더 진보적인 젊은 층을 자극했다.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장벽’으로 파란을 일으킨 뒤 불법 체류자 전원 추방, 무슬림 입국 전면 금지로 저소득ㆍ저학력 백인층부터 장악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념적으론 상극이면서도 선명한 마케팅에선 성공한 게 공통점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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