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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약자 참여 ‘노사정위 2.0’ 새 판 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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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1 면

노동개혁이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노사정위원회의 파행에 이어 정부가 단독으로 노동개혁에 나서겠다고 시동을 걸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 노사정에 노동 약자와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새로운 대화의 장을 열 때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이달 25일 정오를 기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23일 발표했다.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행정지침(이하 양대 지침)을 강행키로 한 데 대한 반발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도심에서 5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정부의 행정지침 발표를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양대 지침은 노동 개악이며 일방적 행정독재”라고 비난했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국민을 배제한 논의’를 꼽았다. 그는 “대부분의 국민은 노사정 대타협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며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소통하는 것이 정치인데 이게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지 못하면서 국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제도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조급증과 전략·소통 부재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는 9·15 합의가 나온 다음날 파견법 등 노동 5법을 국회에 제출했고 한국노총의 파기 선언이 나오자 사흘 만에 양대 지침 강행을 발표했다”며 “국민·국회와 소통하고 타협할 생각도 않고 정부의 의도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강경투쟁을 외치고 있는 노동계도 한 발짝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대 교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들을 위한 양보는 배제한 채 임금피크제 등 자기 문제를 갖고 투쟁에 나섰다”며 “집단 이기주의적 결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 문제를 비용 절감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사측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익명을 요청한 노동분야 전문가는 “최근 신입사원 희망퇴직 논란이 벌어졌던 두산그룹의 총수인 박용만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양대 지침이 실질적으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고 재계에서 아무리 반발해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비정규직, 청년,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들까지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 2.0’을 구성해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노사 대표에 노동 약자 대표가 참여해 타협안을 논의하고 정부가 심판으로 이를 중재하고 입법 등 실행을 담당하는 구조든지, 노사정이 내놓은 안을 노동 약자를 포함한 시민들이 일종의 배심원으로 심의하는 구조든지 기존 노사정위보다 참여 폭을 넓힌 새로운 타협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청업체나 중소업체 경영자까지 참여할 수 있어야 대기업 중심의 (노사정위) 의사결정 구조를 압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나라든 노동 문제를 정부나 국회가 단독으로 처리하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권혁 교수는 “정부가 양대 지침을 바이블처럼 고수해서는 안 된다”며 “노동개혁은 10년, 20년을 보고 추진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파행과 불협화음도 대화의 과정으로 보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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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추인영 기자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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