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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0℃, 좁아지는 EU문 두드리는 난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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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습니다. 두꺼운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나가도 파고드는 바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시베리아에서 확장된 찬 공기가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중국 내륙은 영하 50℃까지 떨어졌고, 한국도 영하 17~1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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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레바논 베카 계곡의 난민캠프에서 폭설 속 빨래를 널고 있는 난민 [AP=뉴시스]

 바람은 야속하게도 공평합니다. 시베리아의 바람은 극동 뿐 아니라 서쪽으로도 입김을 내뿜었습니다. 동유럽지역입니다. 루마니아가 영하 30℃까지 떨어지고 세르비아에 폭설이 내리는 등 동유럽도 한파에 몸서리를 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엄동설한에도 전쟁과 가난을 피해 길거리로 나서는 난민들입니다.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동유럽과 발칸지역의 한파로 난민의 여정이 더 고달파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하 30℃, 좁아지는 EU문 두드리는 난민들

 유럽의 현재 날씨와 기온 [분더맵 http://www.wunderground.com/wundermap/ ]

유엔난민기구(UNHCR)의 리엔 베리데 대변인은 유럽지역 기온이 영하 20℃를 오르내리고 있어 난민들의 생명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난민들이 겨울 옷도 걸치지 못하고 신발조차 없는 상황에서 길을 걷고, 노숙을 하다 보니 폐렴이나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여름 지중해를 넘다 익사한 수만명의 난민들에 이어 이번에는 길거리에서 동사할 위험이 높아진 거죠. 유니세프(UNICEF)도 터키 쪽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 아이들의 동사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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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루트와 유럽의 기온 및 풍속 [참조 : http://earth.nullschool.net/]

 지도에서 보듯 유럽지역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영하 10℃~20℃를 오르내린다는 이야깁니다. 빨간색 화살표와 노란색 화살표는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주요 경로입니다. 짙은 파랑색 구역(영하의 날씨)을 통과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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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지난 8일 레바논 베카 계곡 난민캠프 [AP=뉴시스]

리엔 베이데 대변인은 20일 “기온이 영하 19도까지 내려갔음에도 매일 2000여 명의 난민이 마케도니아에서 세르비아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난민들이 수천명이 이 혹한에 눈발을 맞으며 걷고 있는 셈입니다.

눈이 오는 곳도 많습니다. 난민 중부루트인 지중해와 그리스 쪽에도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UNHCR은 지난해 1월 기준 하루 평균 1708명이 그리스에 도착했고, 12월에는 3508명이 그리스로 들어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리스 레스보스섬 등에는 바닷물에 젖은 티셔츠 차림으로 난민 수속을 밟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곳도 최근 영하를 오르내리는 곳입니다. UNHCR 세르비아 프레스보 사무소의 아스트리드 카스텔레인은 VOA방송에 “겨울 날씨가 지금 난민문제 최고의 관심사”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독일 쾰른시 사태 이후 난민에 대한 유럽의 시각이 차갑게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관련기사 >> 이민자 반란? 쾰른 축제장서 여성 90여 명 성폭력 수난) 난민의 주요 경유지인 오스트리아는 EU국가중 처음으로 올해 난민 수용을 3만 7500명으로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9만여명의 난민을 받는 등 비교적 난민정책에 관대한 국가였습니다. 세르비아도 20일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향하는 난민 숫자를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죠.

아직 EU국가들이 올해 난민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난민들의 마음도 급해졌습니다. 혹한에도 불구하고 난민행렬이 길어지는 건 점차 좁아지는 유럽의 문을 난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점점 더 많이 춥습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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