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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예쁜 집에서 ‘착한 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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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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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저소득층을 위해 2013년 칠레에 지은 ‘반쪽짜리 좋은 집’. 건축가가 반을 짓고(왼쪽) 거주자가 반을 채우게 했다. [사진 엘레멘탈]

“받을 사람이 받았다.”

프리츠커상 받은 ‘반쪽 집’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도 ‘난민’ 이슈
빈민 등 소외계층 위한 보금자리
세월호 이후 국내서도 머리 맞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로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48)가 된 것을 놓고 국내외 건축계는 이렇게 반응하고 있다.

아라베나는 1979년 제정된 상의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근·현대건축으로 유명한 국가 출신도 아니다. 그런데도 세계 건축계가 그의 수상을 이변으로 보지 않는 데는 ‘사회 참여’라는 화두가 있다.

그는 2004년부터 자국 내 저소득층을 위한 ‘반쪽짜리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애초부터 집을 반쪽만 지어주고, 나머지는 거주민이 훗날 지을 수 있게 공간을 비워놨다. 이는 부족한 정부지원금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거주민에게 동기부여 및 성취감을 안겨주는 프로젝트로 거듭났다. 멕시코 등 주변 국가로 프로젝트는 확산되고 있다.

한 가구만을 위한 ‘예쁜 집’에서 여러 세대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착한 집’으로 어젠다가 바뀌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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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반 시게루가 지진 피해를 입은 인도 부즈(Bhuj)에 세운 임시 주택. [사진 카르티케야 쇼단]

  ◆베니스 건축전에 ‘난민 문제’ 등장=이 같은 논의는 올 5월부터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도 이어진다. 올해 건축전에 참여하는 국가 중 상당수의 국가가 ‘난민 문제’를 들고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베니스에서 열린 사전미팅 때 이런 모습이 포착됐다. 건축전에 참가하는 60여개 국가관 중 43개 국가가 참여한 자리였다.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은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독일관의 경우 자국 내에 있는 여러 시설을 난민 수용소로 어떻게 활용할 지를 디자인으로 풀어 보겠다고 발표했다”며 “유럽 국가에서 난민 문제를 많이 들고 나왔다”고 전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세계 건축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건축 올림픽으로 불린다. 올해 주제는 ‘전선에서 알리다’이다. 지난해 선정된, 올해 건축전의 총감독은 공교롭게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아라베나다.

그는 참여 국가에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건축가의 해결방법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디자인으로 과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지를 적극 살펴보겠다고도 했다.

  ◆프리츠커상도 ‘사회 참여’ 점수=건축계의 고민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자연재해를 비롯한 재난, 양극화 등의 초국가적 이슈에서 보금자리를 만드는 건축가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개별 건축물의 미학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건축가들이 사회 참여에 힘을 싣기 시작했고, 프리츠커상 역시 이런 활동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네 수상자의 공통점은 ‘사회 참여’다.

  2013년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집을 잃은 피해자의 임시 거처인 ‘민나노 이에(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피해 지역에 14개 건물을 지었다.

이토 도요는 “건축가가 자신만의 디자인을 만드는 걸 추구하다가 오히려 사회에서 고립된 것 같다”며 “누구를 위해 건축하는 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2015년 9월 26일자 19면>

 이듬해 수상자인 건축가 반 시게루는 1996년 르완다 인종대학살 때 방수 처리한 종이 파이프로 난민수용소를 지었다. 이후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을 찾아다니며 난민과 이재민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만들고 있다.

프리츠커상을 제정한 하얏트재단은 “지난 20년간 벌어진 극단적인 자연재해 현장에서 그는 창의적이고 높은 질의 디자인으로 참여해 왔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수상자인 독일 건축가 고(故) 프라이 오토도 텐트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어 소외 계층을 위한 보금자리 마련에 나섰다. 그는 평소 재해 방지를 위한 건축가의 역할을 피력해왔다.

 국내 건축계의 고민도 비슷하다. 지난해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열린 ‘세월호 이후 건축’ ‘재난포럼’ 등을 통해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하지만 한계도 많고 목소리도 약하다. 김 교수는 “건설과 개발이 주도하는 국내 건축 환경 속에서 건축계의 목소리는 작고, 건축계도 사회에 제 역할을 그만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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