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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세 개의 No, 세 개의 Ye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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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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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도쿄총국장

북한 핵 문제의 시침을 12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2004년 1월, 북한은 미국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영변의 핵 시설을 공개했다. 동시에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200g이 든 유리상자를 보여주었다. 해커 박사가 “시설만 보여줬을 뿐 플루토늄을 얼마나 추출했는지 모르겠다”고 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현 제 1부상) 측은 시찰 후 해커에게 대뜸 “이번 방문이 우리의 핵 억제력(nuclear deterrent) 보유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는가”라고 물었다. 해커는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핵 억지력은 플루토늄 제조 능력, 핵무기 설계·제조 능력, 핵무기의 운반체 탑재 능력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핵 억지는 과거 미·소 간에 작동한 것으로 북·미 간에는 의미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6일의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비교하면 까마득한 옛날 얘기 같다. 북한이 얼마나 핵무장을 향해 질주해 왔는지를 일러 준다. 한국을 비롯한 관계국엔 통째로 잃어버린 12년이기도 하다. 이번 핵실험이 수소탄이든 아니든 북한 핵 능력은 소형화·경량화의 단계로 들어섰다. 탄도미사일은 수(數)도, 사거리도 늘고 있다.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시설은 함께 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결정되면 장거리 탄도미사일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5월의 7차 노동당 대회까지 잠잠할 것 같지가 않다. 핵을 가졌다는 북한의 집단사고는 통상적 도발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또 다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핵 실험 후 해커 박사는 다시 세 개의 노(No) 지론을 펼쳤다. 그는 북핵 시설을 일곱 번 둘러본 인사다. 두 개의 노는 ‘더 이상의, 더 좋은 핵무기는 안 된다(No more, No better bombs)’다. 핵시설 동결과 핵실험 중지가 필요하다. 마지막은 수출 금지(No export)다. 해커는 동시에 세 개의 대가(Yes)를 제시한다. 북한의 안보 우려와 경제난, 에너지 부족에 대한 대응이다. 핵 폐기를 전제로 한 현실적 출발점으로 검토할 만하다. 궁극적 핵 폐기는 세 개의 대가 정도와 맞물려 있을지 모른다.

 핵실험에 대한 제재는 불가결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북한 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북핵은 곧 북한 문제다. 체제 안보와 대내 통치, 통상전력(戰力) 불균형 해소, 외교 수단이 응축돼 있다. 5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없도록 장기적 시야에서 다시 포괄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답은 북한의 핵 포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 관계 정상화를 담은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나와 있다. 관건은 한·미·일·중·러 5개국의 협력이다. 관계국이 북한 핵 문제를 지정학적 이해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핵 비확산 체제에 큰 금이 갔다. 북한의 핵 보유는 5개국 모두에 전략적 부담이다. 북한 핵 문제를 대립과 경쟁 관계의 주변국이 공동 보조를 취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는 구상이 필요하다. 그 역할은 우리의 몫이다.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