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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올림픽팀 기수는 ‘한국 키다리 아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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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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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은 아프리카 모든 나라가 올림픽에 나가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김장훈이 남수단 국기를 배경 삼아 남수단 국가를 부르고 있다. [신인섭 기자]

‘기부 천사’로 유명한 가수 김장훈(49)이 오는 8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에 참여한다. 마이크와 기타를 잠시 내려놓고 국기봉을 잡는다.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206번째로 가입한 아프리카 신생국 남수단 선수단의 기수로 나설 예정이다.

가수 김장훈, 항공비 등 10억 지원
스포츠 지도자 한국 초청해 연수
남수단 정부, 국기 들어달라 요청
“전쟁으로 상처 입은 청소년에게
건강한 육체·정신 선물 하고 싶어”

 남수단 정부가 건국 이후 처음 참가하는 올림픽 무대에서 외국인에게 국기를 맡기기로 결정한 건 자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애쓰는 김장훈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해서다. 김장훈은 서울시 체육회와 손잡고 오는 3월부터 순차적으로 남수단 스포츠 지도자 3~4명씩을 한국으로 초청해 연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남수단의 8개 체육단체 중 한국인 임흥세(60) 총감독이 이끄는 축구를 제외한 7개 종목(농구·핸드볼·탁구·복싱·육상·태권도·유도) 지도자들이 대상이다. 남수단 지도자들이 서울시 체육회 산하 체육단체의 훈련 과정을 참관하고 때론 직접 참여해 선수 지도 노하우를 익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최대 10억원으로 추산되는 이들의 왕복 항공료와 국내 체류 비용을 김장훈이 댄다.

 김장훈은 지난 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 지도자들을 남수단에 파견하는 방안을 먼저 검토했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지원자가 없어 계획을 바꿨다”면서 “해당 종목의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다. 남수단이 장기적으로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한국 체육의 장점을 이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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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케냐 시골 마을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를 즐기는 김장훈(오른쪽). [사진 김장훈]

 김장훈이 아프리카에 손을 내민 건 지난 2014년 임 감독과 함께 케냐의 오지 마을에서 보름간 봉사 활동을 한 이후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현지 어린이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체험한 뒤 기부 활동의 큰 줄기를 아프리카로 돌렸다. 남수단은 김장훈이 ‘아프리카 프로젝트’로 명명한 기부 프로그램의 첫 대상국이다. 지난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해 탄생한 남수단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100달러(254만원·2014년 기준)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이다.

의·식·주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대신 스포츠 발전을 돕는 이유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수단 사회에 꿈을 심기 위해서다. 김장훈은 “전쟁 여파로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가 됐다. 인구 1200만 명 중 14세 이하의 비율이 45%에 이른다”면서 “남수단의 미래를 책임질 유·청소년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야의 바둑 고수(아마 5단)로 한국기원 홍보대사도 맡고 있는 그는 “정신 운동인 바둑도, 근육을 쓰는 축구도 스포츠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삶의 희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같다”면서 “축구스타 디디에 드록바(38·몬트리올 임팩트)의 간곡한 호소를 받아들여 내전을 일시 중단한 코트디부아르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스포츠는 ‘아프리카의 3대 악재’로 일컬어지는 전쟁과 가난·질병을 극복할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장훈은 오는 3월 남수단 수도 주바로 건너가 ‘아프리카 평화 콘서트’를 연다. 아리랑을 비롯한 한국 노래 뿐만 아니라 현지 히트곡도 섞어 호응을 이끌어 낼 예정이다. 김장훈은 “공연에서 남수단 국가를 부르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동영상을 구해 맹연습 중”이라며 “일본과 중국이 남수단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남수단 국민들은 IOC 가입을 주도하는 등 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도운 한국 사람들을 형제로 여긴다. 이번 콘서트가 한국과 남수단의 우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프로젝트’의 중장기 목표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나라가 IOC에 가입해 이 지역 주민들이 더욱 나은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김장훈은 “뜻있는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케냐에 건립한 어린이 축구학교의 이사장직 제의도 최근 수락했다”면서 “아프리카 토속말인 스와힐리어(語)로 ‘친구’를 ‘라삐끼’라 부른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이 ‘라삐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글=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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