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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가비상사태라면서 과테말라로 떠난 집권당 원내대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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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2일 출국했다. 박근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8일 귀국 예정이니 일주일 가까이 국회를 비우는 것이다. 비판 여론이 일자 원 원내대표는 “특사를 바꾸면 상대방에 대한 외교적 결례고 기분 나쁠 수 있어서 예정대로 갈 수밖에 없다”며 강행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 왜 집권당 원내 사령탑이 가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총선이 불과 석 달 앞인데 초유의 선거구 무효 사태는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12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다시 받고, 검경은 이들의 선거운동을 단속하지 않는다지만 엄격하겐 불법 방치, 불법 행위다.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예비후보자들의 소송으로 입법부는 이미 피고가 됐다. 4월 총선 후 낙선한 예비 후보자들이 대거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면 더 큰 혼란도 생길 수 있다. 국회가 법을 위반하고 선관위와 검찰이 편법을 쓰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여당 원내대표는 밤새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호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판이다.

 게다가 막 시작된 1월 임시국회는 노동개혁 5개 법안 등 쟁점 법안을 논의 중이다. 가뜩이나 새누리당 의원들만의 요구로 소집된 1월 국회는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19대의 마지막 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19대 국회 내내 지속된 입법 실종, 빈손 국회 비난을 털어낼 마지막 기회다. 특히 원 원내대표는 쟁점 법안 처리가 안 되는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한 뒤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압박한 당사자다. 조속한 법안 처리를 수차례 촉구한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담화에서 입법을 다시 당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진정성과 설득력이다. 국가비상사태라던 여당 원내대표가 여유 있게 과테말라로 향한다면 누가 그의 위기감에 공감하겠는가. “민생으로 돌아오라”는 야당과 국회의장을 향한 외침엔 얼마나 힘이 실리겠는가. 집안 싸움에 밖으로만 겉도는 야당도 문제지만 여권은 과연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딱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