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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구조개혁 하겠다는 유일호, 실천으로 보여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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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극심한 혼돈과 불확실성에 휩싸인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에 오늘 취임한다. 그의 어깨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부총리 전임자 현오석·최경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겁다. 새 정부 출범 당시보다 경제 여건이 나빠졌고 이에 대응해 꺼내들 재정·통화정책 수단도 거의 소진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유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일관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정책방향을 밝혔다. 이는 안이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심각한 상황 오판을 부를 소지가 크다.

 한국 경제는 어디를 둘러봐도 좋은 구석을 찾기 어렵다. 청년층 취업자 64%가 비정규직에 취업할 만큼 고용 상황이 나쁘고 가계는 미국발 금리인상까지 시작되면서 1200조원에 달한 빚더미에 손발이 꽁꽁 묶여 소비가 어렵다. 나라 살림은 3~5세 무상보육(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 4조원을 대지 못해 극심한 혼란을 빚을 만큼 팍팍하다. 여기에 기업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세수도 신통치 않다. 지난해 담뱃세 인상과 소득세제 개편 효과가 없었으면 세수 결손이 계속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대를 건다면 유 후보자가 들고나온 구조개혁 카드다. 그런데 이게 자칫 썩은 도끼자루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재 구조개혁이라고 하면 노동·금융·공공·교육 4대 개혁인데 기존 내용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공개혁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시늉에 불과했고 저성장 탈출과도 관련이 없다. 노동 개혁은 좌초 직전이다.

 구조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기존 4대 개혁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기존 방안은 정책목표와 효과가 불분명하다. 더구나 개혁이 되더라도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기본 인프라에 불과하다. 사업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세상에 공무원이 허락하는 일만 하는 개발연대 방식으로는 경제의 혁신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의 기조를 따른다는 유 후보자의 인식으로는 혼돈을 헤쳐나갈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1, 2기 경제팀은 국익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실기(失機)하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부총리가 철학을 갖고 책임 있는 경제정책을 펴지 못한 결과다. 유 후보자는 가뜩이나 경제정책 실무의 경험이 없다. 국회의 몽니를 뛰어넘을 정책카드와 실천력이 없이는 한국 경제의 표류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3기 경제팀은 정부의 잔여 임기를 고려하면 사실상 순장조에 가깝다. 경제 환경은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강력하고 치밀한 전략과 실천력이 중요하다. 유일호 경제팀은 이번 정부에서 기조를 물려줄 후임자가 사실상 없다. 배수의 진을 치고 강력한 구조개혁의 액션플랜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