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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안철수 “지푸라기 잡고픈 광주 심정 알아 … 제가 지푸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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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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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한 안철수 의원이 11일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 김한길 의원 등과 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현충탑에 참배한 뒤 한 위원장이 방명록을 쓰고 있다. 이날 안 의원 일행은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대통령 묘소를 차례로 참배했다. 왼쪽 둘째부터 김한길·김동철·임내현·안철수·김영환 의원.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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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이 ‘호국영령과 대통령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겠습니다’라고 쓴 방명록. 안철수·김한길 의원이 서명했다. [강정현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의식적으로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 뒤에 섰다. 11일 오전 8시 서울 동작동 현충원의 방명록 앞에서였다.

안 의원 1000㎞ 동행 르포
안철수 사당 논란 부담스러운듯
현충원 참배 때 한상진 뒤로 물러나
맨 앞자리도 방명록 작성도 양보
“대선 생각하면 총선서 심판받을 것”

   문병호 의원이 “방명록을 쓰시라”고 권하자 “오늘부터 위원장이 쓰시면 되지요”라고 사양했다. 결국 한 위원장이 “호국 영령과 대통령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겠습니다. 국민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한상진”이라고 쓰자 그는 옆에 ‘안철수’란 이름만 추가했다. 김한길 의원도 옆에 서명만 했다.

   참배 위치로 중앙에 한 위원장, 왼쪽에 안철수, 오른쪽에 김 의원이 섰다. 일행 사이에 “당 공식 서열이 드러났다”는 농담도 나왔다. 이후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에서도 안 의원은 두 번째 순서를 지켰다. 창당 의식과 같은 행사에서 안 의원이 조연으로 물러난 것은 ‘안철수 사당(私黨)’ 논란을 피하려는 뜻으로 보였다.

   안 의원은 이날 새벽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검은색 노스페이스 백팩 가방 하나를 메고 나왔다. 가방에는 아이패드와 창당 실무 보고서 등이 가득했다. ‘더불어민주당 권노갑 고문이 12일 탈당 회견을 하고 호남 의원들이 대거 추가 탈당할 것’이란 기사가 실린 중앙일보 11일자도 들어 있었다. 현충원 참배 후 광주로 내려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안 의원이 25일 만에 방문한 광주 분위기는 지난달 탈당 직후(2015년 12월 17일)와 또 달라졌다. 공항엔 안철수를 사랑하는 전국모임(안전모) 회원 25명이 ‘응답하라 안철수’란 연두색 플래카드를 들고 환영인사를 나왔다. 안전모 소속 김영준(52)씨는  "광주 시민들은 4월 총선이 아니라 정권 교체의 희망을 안 의원에게 걸고 있다”며 “2012년 대선 때 열기를 회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광주 지성과의 대화’ 행사가 열린 상록회관 앞에선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한 시민이 안 의원을 보고 길을 멈추더니 “확실히 바꿔야 합니다. (지지도가) 65%는 됩니다. 앞으로 서울로 올라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안 의원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례했다.

광주 시민들 기대가 커 보입니다.
 제대로 당을 잘 만들면 됩니다. 제발 정치 좀 바꿔달라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대를 걸고 계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푸라기입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했는데요.
 역사에서 배워야죠. (전직 대통령의) 공(功)은 계승하고 과(過)에선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광주 행사에서 한 지지자가 ‘대통령이 되면 호남 소외를 어떻게 풀 것이냐’고 하자 안 의원은 “지금 대선을 생각하는 사람은 국민이 금방 알아채고 총선에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 머릿속에 대선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지금은 어떻게 총선을 잘 치를까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면서다.

 전남 순천으로 이동해선 ‘안철수, 정치개혁과 정권교체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지금 시대는 호남 소외를 포함해 지역·빈부·세대·남녀·지역,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격차 해소와 통일이 시대적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정치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호남지역 방문에 앞서 라디오 인터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당 대표직을 제안했느냐’란 질문이 나오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답했다. 그는 수일 전 기자에게 “당 대표직에 외부의 훌륭한 인물을 모시고 싶다”고 했지만 이날부터는 당의 결정을 앞세웠다.

 안 의원은 이날 광주·순천 방문을 마치고 처가인 여수에서 하룻밤을 잤다. 12일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는다. 국민의당 창당 첫걸음으로 야당 출신 두 지도자(김대중·노무현)의 고향 방문 일정을 잡았다. 이동거리만 약 1000㎞다. 하지만 호남 민심이 안 의원을 환대만 한 건 아니었다.

광주 행사장에서 만난 조선대 3학년 박세연(22)씨는 “청년들 사이에선 야권 분열로 정권교체의 희망이 더 없어진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새 정치를 얘기하던 안철수가 다른 정치인과 똑같아진 게 아니냐고 실망한 친구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광주·순천·여수=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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