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영준 특파원 타이베이를 가다] “국민당 심판” 취업난 대만 청년들 야당에 저금통 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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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선거에 민진당 후보로 출마한 차이잉원(가운데)이 10일(현지시간) 대만 남부 타이난 유세 현장에서 입법원 의원으로 출마한 민진당 후보 린쥔쉔(왼쪽)과 타이난 시장 라이칭더(오른쪽)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타이난 AP=뉴시스, 예영준 특파원]

9일 오후 4시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도심의 중정기념당 앞 자유광장. 16일 실시되는 총통선거에 출마한 국민당 주리룬(朱立倫·55) 후보의 유세에 모여든 10만 인파가 광장 인근 8차선도로까지 메웠다. 주 후보는 “민진당이 집권하면 양안관계가 흔들린다. 안정을 원하면 국민당에 표를 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60) 후보는 이날 대만 남부 핑둥(屛東)현의 한 도교사원에서 출정식을 갖고 마지막 전국 순회 유세길에 올랐다. “핑둥의 딸, 이제는 총통으로”란 함성이 넘쳐났다. 그가 대만 제2의 도시인 가오슝(高雄)까지 차량 행진을 하자 도로변의 아파트 주민들은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양안 교류로 기업가만 배불려”
꼬깃꼬깃 모은 지폐 민진당 답지
야당 후보 차이잉원 지지율 치솟아
고령층은 “국민당 덕 이만큼 살아”

 대만 언론들은 선거전 마지막 주말을 맞아 양당이 총력전을 펼친 이날을 ‘황금주말’ 또는 ‘수퍼 새터데이’라 표현했다. 양당이 각각 북부 타이베이와 남부 가오슝을 유세지로 고른 데엔 이유가 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이른바 외성인(外省人)들은 북부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반면 그 이전부터 대만에 살던 토착세력인 본성인(本省人)들은 남부 지역에 많고 이들은 국민당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북부·외성인=국민당’과 ‘남부·본성인=민진당’의 대립구도가 형성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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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이 민진당 당사로 보내온 돼지저금통. [타이난 AP=뉴시스, 예영준 특파원]

 이번 선거에는 새로운 대립구도가 추가됐다. 중·노년층은 국민당을, 젊은 층은 민진당을 지지하는 세대간 대립이다. 9일 국민당 유세에 모인 지지자들은 평균 연령이 60세 이상으로 보였다. 50대 지지자는 오히려 젊은 축에 들어갔다. 인근 도시 지룽(基隆)에서 온 60대 초반의 조앤 뤄(羅)는 “최근 경기가 어렵긴 하지만 이만큼 살게 된 건 다 국민당 덕택”이라며 “반대와 항의만 일삼는 민진당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당 당사와 선거운동본부를 가보니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이었다. 행인들에게 핫팩을 나눠주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별로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민진당 당사에는 대학생을 포함 젊은 층 지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0일 오전 당사에 들른 자영업자 천정웨이(陳政緯·35)는 돼지저금통 세 개에 지폐와 동전을 나눠 담아 헌금 접수창구에 건넸다. 천은 "가족이 맡긴 돈까지 합쳐 3000 대만달러(약 11만원)를 냈다”며 “차이 후보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지난 8년간 경제가 무너지게 만든 국민당 정권을 이번엔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후원금을 담은 돼지저금통을 보내오고 있다. 젊은 층의 반(反) 국민당 정서는 경기 침체에 따른 취업난의 영향이 크다. 탄탄하던 대만 경제는 국민당이 재집권한 지난 8년동안 침체를 거듭했다. 일간 연합보는 9일 “지난해 수출은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했고 성장률은 1% 를 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잔 웡은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는데 친구들 가운데 취업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최근 급격히 확대된 양안 경제 교류의 과실은 소수 기업가와 국민당 정치인들만 독차지하고 서민들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고 말했다.

 여론 조사를 봐도 이런 정서는 여론조사로 뚜렷이 나타난다. TVBS의 5일 여론조사에서 차이 후보는 43%, 주 후보 25%의 지지를 얻었다. 자유시보 조사에서는 48%대 15%로 격차가 더 컸다. 특히 20대에선 차이 후보 지지율이 54%인 반면 주 후보는 4.6%에 그쳤다.

예영준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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