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박차고 나오기는 쉬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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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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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여덟 살 어린아이가 아빠의 친구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인자하게 답했다. “작곡가란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직도 살아 있어요?”

 이 작곡가 아저씨의 이름은 독일의 볼프강 림(63). 20세기 현대음악사의 중요한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대중에게는 낯설다. 여덟 살 어린아이라 모차르트·베토벤처럼 죽은 사람만 작곡가로 생각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현대인 머릿속에서도 작곡가는 18~19세기 사람들뿐이다. 림은 자신이 겪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위적인 현대음악을 비판했다. 청중이 즉각 이해할 수 있는 음악, 단순한 구조의 작곡을 추구했다.

 20세기 이후 현대음악사를 보면 어지럽다. 판이 계속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림을 비롯한 많은 작곡가가 기존의 작법을 비판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다음 세대는 그 흐름을 다시 뒤집었다. 수백 년 전통의 조성체계를 부쉈던 ‘체인지 메이커’ 아널드 쇤베르크도 50년 만에 낡은 작곡가로 몰렸다. 1950년대 젊은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가 ‘쇤베르크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예술가들은 더욱 새로운 것을 추구하거나 잊힌 전통에 복귀하는 식으로 이전 세대를 극복한다. 존 케이지의 유명한 ‘4분33초’는 작품의 중심에 작곡가가 있다는 개념을 깼다. 그동안 작품 안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작곡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은 청중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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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와 단절하는 것은 후배의 숙명이다. 이전 세대에 대한 반란은 새 세대에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어찌 보면 쉬운 일이기도 하다. 권위를 가진 선배를 비판하면 적어도 주목은 받는다. 당연히 문제는 그다음이다. 진짜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작업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 스스로 기존의 낡은 권력으로 곧 지목되는 것은 아닌가.

 이 관문에서 살아남은 이들만이 진짜 명성을 얻는다. 앞에 등장했던 볼프강 림은 ‘새로운 단순성’이란 작곡가 그룹 중 한 명이다. 림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작곡가들은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음악을 만들자며 뭉쳤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는 림 정도다. 자기만의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가 ‘박차고 나오기’에 비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준다. 어디 작곡가들뿐일까. 세대 간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엔 젊은, 그리고 젊었던 여러 작곡가의 이름과 음악이 떠오른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