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핵 해결하려면 미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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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4일째인 10일, 한반도 상공에는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가 날았다.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이 폭격기는 괌을 출발, 이날 정오쯤 오산 상공에 도착했다. 미국은 또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기지에 있는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을 다음달 한반도로 출동시키는 동시에 핵추진 잠수함, B-2 스텔스폭격기 등 다른 전략무기의 단계별 투입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 이후 급박해진 상황 속에서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기 위한 무력시위다.

 미국이 이런 조치를 취해주는 건 고맙지만 무력시위는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전략무기들이 한반도를 스쳐 가더라도 이 땅에 주둔하지 않는 한 한·미 연합군의 전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미 오바마 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일이다. 2009년 이래 미국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란 이름 아래 사실상 북한과의 대화를 외면해 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대화나 지원도 없다는 게 이 전략의 핵심이다. 핵무기가 유일한 생존 수단이라 믿는 북한이 스스로 무장을 풀 걸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당연히 예고된 실패나 다름없었다. 전략적 인내 전략을 채택한 이래 북한이 핵실험을 세 차례나 감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정책의 한계를 증명해준다.

 이란에선 효과를 봤을지 모르지만 제재 일변도의 전략은 북한엔 잘 통하지 않는다. 경제제재에 고통받는 중산층과 정권 교체를 가능케 하는 선거제도 등이 이란에는 있지만 북한에는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이 석유 공급을 끊지 않는 한 유엔이 어떤 제재를 취한들 김정은 정권이 꼼짝할 리 없다.

 현실적이고도 유일한 대안은 워싱턴에서도 실패로 판정받은 전략적 인내 전략을 거두고 보다 적극적인 ‘개입 정책(engagement policy)’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지적했듯 북한과 대화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훨씬 적다. 쿠바와 이란과도 말문을 텄던 오바마 정권이다. 북한이라고 외면할 이유가 없다.

 계속 기피하면 북한은 머지않아 핵무기 소형화는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2차 공격 능력을 못 갖춘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커다란 위험이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 무기 개발을 끝마치면 북한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시간이 미국 편이 아니란 얘기다. 되도록 빠른 개입 전략이 절실한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이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가장 다급한 건 우리다. 누구보다 앞장서 오바마 행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우리 정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