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지켜진 정운찬 전 총리와 김현수의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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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안 가?"
"저, 결혼하면 주례 부탁드려도 되나요?"
"당연하지."

메이저리거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가 9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현수는 6년간 만난 아내를 위해 예식을 비공개로 치렀다. 하객의 대다수는 친지와 동료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야구인들 중에서도 눈길을 끈 사람이 있었다. 주례를 맡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였다.

정 전 총리는 유명한 야구광(狂)이다. 경기중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던 그는 프로원년인 OB(두산 전신) 시절부터 팬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를 보러다니느라 박사 학위 취득이 1년 늦어졌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2008년에는 라디오 중계 특별 해설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3년 전에는 야구와 함께 살아온 삶을 돌아본 '야구예찬'이란 책을 펴기도 했다. 두산 선수들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정 전 총리는 "몇 년 전 사석에서 김현수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주례를 부탁드리겠다'고 했다. 잊지 않고 연락을 해서 흔쾌히 맡았다"고 웃었다. 정 전 총리는 손시헌(NC)과 김재호의 결혼식에서도 주례를 섰었다.

정 전 총리의 주례사에는 김현수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정 전 총리는 '타격기계'라는 김현수의 별명을 소개하며 "병살타나 삼진을 당한 뒤 겸연쩍어 하는 모습, 홈런을 쳤을 때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웃었다. 정 전 총리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며 현관에서 신발을 돌려 놓아놓는 작은 배려에서 출발하고, 파트너의 귀를 기울이라"는 조언도 보탰다.

마치 해설가처럼 구체적인 구단 상황과 전망을 짚어주는 대목에서는 하객들 사이에서 미소가 퍼져나기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오리올스는 수비도 잘하고, 출루율도 높은 타자를 구했고, 김현수가 적격이었다. 게다가 홈구장은 우측 펜스까지의 거리가 잠실보다 짧다"며 "미국서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최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켄 그리피 주니어처럼 공격과 수비, 품행까지 훌륭한 선수가 되어주길 바란다"는 당부까지 전했다.

신혼여행까지 미룬 김현수는 실내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다. 곧 비자가 나오는대로 미국 LA로 날아가 볼티모어 구단과 관계를 맺고 있는 트레이닝 센터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한다. 2월부터는 스프링트레이닝이 열리는 플로리다로 이동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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