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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5만 명 품위 있는 죽음 가능 … 한방 의료는 포함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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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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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일명 존엄사법)’은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품위 있는 생의 마무리를 주장하는 측과 생명 윤리를 중시하는 측이 19년간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런 가운데 2009년 5월 세브란스에 입원한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도록 허용한 대법원 판결과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존엄사 입법화 권고 등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존엄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심폐소생술·항암제·인공호흡기 등
네 가지 연명의료만 중단 가능

 이날 법안이 통과되면서 연간 5만여 명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됐다. 중환자실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주렁주렁 달다가 숨지거나 집에서 말기를 보내다 임종 상황에 되레 중환자실로 들어가 연명하는 일이 사라지게 됐다. 자녀들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연명의료를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의사는 살인방조죄, 가족은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 수개월간 인공호흡기 신세를 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의료비 절감 효과도 생긴다. 사망 한 달 전 연명의료에 연간 3130억원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이 나가는데 이런 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법률이 정한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는 네 가지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그것이다. 법률안 초안에는 대통령령(시행령)에서 추가할 수 있게 했으나 최종 법안에서는 네 가지로 못 박았다. 다만 통증 완화의료, 영양분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정한 대로 따랐다. 새로 추가하려면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을 고쳐야 한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앞으로 의료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연명의료 행위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반영하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0일에는 국회 법사위에서 침과 같은 한의학적 의료를 포함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본인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환자가 의식 불명이더라도 미리 작성해둔 사전의료의향서가 있거나 의사가 환자와 상의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으면 환자 의사로 본다. 이런 문서가 없어도 가족 두 명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확인하면 환자의 뜻으로 간주한다.

 본인 의사를 추정할 수 없는 경우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중단할 수 있다. 가족은 배우자·자녀·부모를 포함하며 이런 사람이 없으면 형제·자매가 결정할 수 있다. 가족이 없을 경우 법안 초안에서는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게 했으나 최종 법안에서는 삭제됐다. 가족이 없으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앞으로 정부가 양식을 통일할지, 정부는 기본 사항만 정하고 민간에서 나머지 사항을 추가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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