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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만 세는 한국, 집+바둑돌 세는 중국 … 계가룰이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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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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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몽백합배 결승 최종국에서 이세돌 9단이 커제 9단에게 반집 차이로 지면서 중국식 계가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중은 계가 방식 등 일부 바둑 규정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이 주최한 몽백합배에서는 중국의 룰에 따라 진행됐다. [사진 한국기원]

5일 오후 5시쯤 한국 바둑팬들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이세돌 9단이 중국 장쑤(江蘇)성 루가오(如?)시에서 열린 제2회 MLILY 몽백합(夢百合)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5번기 최종국에서 커제(柯潔) 9단에게 백 반집 패한 것이다. 이날 패배로 이 9단은 종합전적 2승 3패로 커제에게 우승 트로피를 넘겨줬다.

중국선 ‘공배’도 집으로 계산
이세돌 몽백합배 결승 반집패
한국 두툼, 중국 납작 돌도 달라
이창호 “국제대회 규정 통일해야”

 이번 결승전은 한·중 최강자들의 대결로 시작 전부터 화제였다. 대국 전 커제가 “내가 이길 확률이 95%”라고 말하며 이세돌을 도발한 것도 흥행몰이에 한몫했다. 결승전은 4번기까지 2대 2로 팽팽히 맞서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끝까지 격차가 미미했던 최종국에서는 한·중의 다른 계가(計家) 방식이 논란이 됐다.

한국 룰대로 바둑을 두면 이세돌 9단의 반집 승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커제 9단이 중국 룰에 따라 공배(空排)를 메우며 반집 패를 버티자 팻감이 부족한 이 9단이 오히려 반집 지고 만 것.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공배도 집이 되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이번 대국을 계기로 한·중 바둑의 차이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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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두툼한 한국 바둑돌(왼쪽)과 납작한 중국 바둑돌. [사진 한국기원]

 1. 바둑돌=한국과 중국은 바둑돌부터 다르다. 한국 바둑돌은 가로로 넓은 타원형으로 위아래 구분이 없다. 하지만 중국 바둑돌은 한국 바둑돌보다 얇고 납작하다. 또 위는 둥글고 아래는 편편해서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대국할 때는 편편한 쪽을 바둑판에 닿게 두지만, 복기할 때는 둥근 면을 바둑판에 닿게 놓는다. 복기할 때는 여러 수를 빠르게 놓기 때문에 바둑돌을 움직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2. 덤=덤은 쉽게 말하면 ‘핸디캡(handi cap)’이다. 바둑판은 공간이 제한돼 있으므로 당연히 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다. 이런 흑백 간 불균형을 막기 위해 계가할 때 백에 몇 집 더 주는 것이 덤이다. 한국에서는 덤이 6집 반인 것과 달리 중국은 덤이 7집 반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덤이 다르면 바둑 내용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흑의 핸디캡이 더 크기 때문에 흑을 잡으면 조금 더 공격적인 바둑을 두는 경향이 있다.

 3. 집=집의 개념도 한·중이 다르다. 바둑을 전쟁이라 치자. 한국은 집을 따질 때 영토와 포로(사석)가 중요하다. 중국 바둑은 다르다. 영토와 생존 병사(바둑판 위에 놓인 돌)가 중요할 뿐 포로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중국 바둑은 마지막까지 돌 하나라도 더 바둑판 위에 올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선 아무 의미 없는 공배 메우기가 중국에서는 중요한 끝내기인 이유다.

 4. 계가=집의 개념이 다르니 계가 방법도 다르다. 한국은 바둑이 끝나면 먼저 사석으로 상대 집을 메운다. 그 다음 10집 단위로 집을 가지런히 정리해 집 차이를 비교한다. 하지만 중국은 일단 집 수를 센 다음 바둑판을 한 번 더 정리해 10개 단위로 바둑돌 개수를 센다. 또한 중국 바둑은 심판이 계가를 대신한다. 한국에선 기사들이 바둑을 끝내고 직접 계가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5. 착수금지(着手禁止)=바둑에는 일정한 곳에 착수(돌을 놓는 것)를 금하는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수를 두어 공배가 모두 메워지는 자리는 돌을 놓으면 안 된다. 만일 그곳에 착수하면 상대는 그대로 들어내야 하는데, 이는 번갈아 바둑을 두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자리에 돌을 놓으면 바로 반칙패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즉각 반칙패 처리하지 않고 경고 1회와 1자(한국의 2집)의 벌점을 부과한다. 경고가 두 번 쌓이면 실격 처리된다.

  나라별로 다른 바둑 규정은 국제대회에서 혼선을 불러일으킨다. 드물지만 대국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재는 대회 주최국의 규정을 따르는 것으로 정리돼 있는 상황이다. 이창호 9단은 “중국 룰은 합리적이지만 너무 복잡해서 나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며 “국가 간 합의를 통해 바둑 규정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봉수 9단 역시 “바둑이 아시아를 넘어 국제적으로 판을 넓히기 위해서는 단일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며 “단기간에 쉽지 않겠지만 바둑의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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