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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법정 최고금리는 왜 필요한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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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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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법정 최고금리를 왜 정하는 것인가요. 최근 국회에서 대부업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 연 34.9%였던 법정 최고금리가 사라졌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법정 최고금리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는지 궁금합니다. 또 최고금리가 없으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서민들 대출 이자 폭탄 방지 … 작년까지 연 34.9%였죠

A 법정 최고금리는 말 그대로 법으로 정해놓은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금리입니다. 예금이 아니라 대출에만 적용되는 금리이지요.

금융회사나 대부업체가 급전이 필요한 고객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금리의 상한선을 정해놓은 겁니다. 서민에게 큰 고통인 ‘대출 이자 폭탄’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유명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빗대, ‘현대판 샤일록 방지 금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샤일록은 평소 미워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뒤 기한 내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베어내겠다는 조건을 걸었죠.

 대부업체의 최고금리는 대부업법상 지난해까지 연 34.9%로 정해져 있었어요. 법 조항의 유효기간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어요. 이런 걸 일몰 조항이라고 하는데요. 하루가 지나면 해가 지듯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법 조항을 말하죠. 그때그때 상황이 바뀔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취지로 만든 조항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최고금리 일몰 시한을 3년 더 늘리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또 법정 최고금리도 연 34.9%에서 연 29.9%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최근 2년간 대형 대부업체(36개사)의 평균 대출 원가 감소치(4.35%포인트)를 감안하면 5%포인트 정도 낮춰도 된다고 판단한 거죠.

여야는 이것도 높다고 판단해 최고금리를 정부안보다 낮은 연 27.9%로 정하기로 잠정 합의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이 법안이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에 몇 달째 계류돼 있다는 겁니다. 다른 법안과 묶어 처리하려는 여야의 기 싸움 때문에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이렇다 보니 대부업법 일몰조항이 지난해 말로 끝나면서 규제 공백이 생겼습니다. 개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대부업체의 대출금리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서민을 상대로 한 고금리 대출이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금융당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통제를 덜 받는 일부 중소 대부업체가 ‘반짝 특수’를 노리고 연 50~100%의 대출상품을 내놓아도 별다른 법적 제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금융당국이 연 34.9%를 넘는 금리를 받지 못하도록 대부업체를 행정지도하고 있지만 법적인 강제성이 없어 효과가 의문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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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최고금리 제한의 역사는 꽤 깊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이자(자)를 원금(모)보다 많이 받을 수 없도록 정한 ‘자모정식법’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월 금리를 3%로 제한했고 영조도 연 20%로 최고금리를 정했습니다.

일제시대엔 1911년 제정된 이식제한령을 통해 원금 기준으로 ▶100원 미만 연 30% ▶100~1000원 연 25% ▶1000원 이상 연 20% 식의 금액별 최고금리를 정했습니다.

 해방 이후엔 1962년 이자제한법이 제정되면서 법정 최고금리가 정착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법 규정으로 최고금리를 연 20%로 제한했다가 65년 ‘원금 5000만원 이상에 대해서만 연 40%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바꿨습니다. 대부업체·은행·보험회사는 물론 개인 간 거래에도 적용됐죠.

 이렇게 정해진 최고 금리는 98년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이자제한법이 없어질 때까지 36년간 유지됐습니다.

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에 구제금융을 한 국제통화기금(IMF)이 고강도 금융개혁을 요구했어요. 이자제한법 폐지도 그 중 하나였죠. 시장의 자금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져야 하는 금리를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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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영국 같은 서구 선진국처럼 최고금리를 명시하지 않고, 폭리 계약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결에 맡기라는 게 IMF의 권고였죠.

 그런데 알고 보면 서구에서도 법정 최고금리를 두고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원칙적으로 연 16%를 최고 금리로 두고 있고, 연 25%가 넘으면 법원이 제재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도 소비법전에 평균 시장금리의 3분의 1까지만 추가금리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죠.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으로서는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는 요구였죠. 하지만 당시 IMF가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채권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반대 논리로 대응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98년 1월 이자제한법이 폐지됐습니다. 그때부터 대출금리는 무제한이 됐습니다. 외환위기로 실직한 뒤 생활자금·창업자금 마련을 위해 연 100~200%의 사채를 받았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서민이 속출했습니다. 신용카드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카드 현금서비스를 썼다가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급격하게 늘었죠.

 2001년 구제금융 졸업과 함께 공식적으로 IMF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부는 다시 최고 법정금리를 두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고금리 사채의 피해를 막는 것은 물론 사채업자에게 공식 대부업자가 될 기회를 줘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자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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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2002년 10월 대부업법을 제정해 대부업자에 대해서는 연 66%의 금리 상한선을 뒀죠. 다만 과거 IMF의 규제완화 권고를 고려해 2~3년 시행한 뒤 다시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몰조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만든 일몰조항 원칙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그러나 대부업법만으로는 고금리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개인 간 돈을 꿔주는 거래는 여전히 금리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죠.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에 폐지 9년 만에 이자제한법을 부활시켰습니다. 개인 간 거래에 대해 최고 금리를 연 30%로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이후 이자제한법 상 최고금리를 7년간 유지하다가 2014년 7월 연 25%로 내렸습니다.

 대부업법 최고금리는 연 66%로 정해진 지 5년만인 2007년 연 49%로 낮춰졌습니다. 연 66%가 너무 높다는 여론을 반영한 조치였습니다. 이후 2010년(연 44%)·2011년(연 39%)·2014년(연 34.9%)에 내렸다가 올해부터는 연 27.9%로 한번 더 내리기로 한 거죠. 금리가 내려갈 때마다 대부업체 수는 크게 줄었습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전체 대부업체는 8762곳으로, 8년 전인 2007년(1만8197개)의 절반으로 감소했습니다.

 대부업계는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수익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연 30%대 고금리 장사를 했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있었죠. 금리가 높다 보니 연체자에게 떼이는 돈을 성실 상환자에게서 받는 이자로 메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고금리가 연 27.9%로 낮아지면 대출심사를 더 까다롭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다 보면 대출 수요자가 줄면서 수익이 낮아질 수 있죠. 더구나 올해 인터넷전문은행이 생기면 연 10%대의 중(中)금리 대출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업계로서는 생존을 위한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죠.

더 이상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지 말고 중금리를 비롯한 다양한 금리의 상품을 출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그것이 대부업체가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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