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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금리 안 올리면 자본 유출, 올리면 경기 위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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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리 인상으로 본 한국 경제

미국 금리가 결국 올랐다. 지난달 16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미국 기준금리를 0~0.25%에서 0.25~0.5%로 0.25%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해 제로금리를 채택한 2008년 12월 이후 7년 만이다. 미국은 올해 단계적으로 금리를 더 올릴 예정이다. 세계 경제는 금리 인상을 주도하는 미국과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景氣) 부양책을 추진 중인 유럽·중국·일본의 두 개 축으로 나뉘게 됐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한국 경제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올해 상반기를 지나며 한국도 금리 인상 시점을 조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금리 인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언론과 교과서를 통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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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플레이션 우려로 제로금리 폐지

미국은 2008년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 기준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해왔다. 금리가 0에 가까운 초저금리를 통해 시장에 돈을 무한대로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양적완화(量的緩和) 정책이다. 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경기 부양책이다.

하지만 양적완화 정책은 두 가지 한계가 있는 정책이다. 첫째, 시장에 과도하게 돈이 풀리는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예상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제로 금리를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다시 경제 위기가 찾아왔을 때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지난해 미국 경제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금리 인상 논의는 본격화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실업률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완전고용 수준으로 추정하는 4.9%에 근접한 5%로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미국 제조업 분야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3.4%나 올랐다. 2009년 3분기 이래 최대 증가다. 임금이 계속 오르면 인플레이션은 시간문제다. 경기 침체에 시달리던 미국이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천재교육 『경제』 교과서는 “적정 수준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경제가 불안정해지면 사람들은 저축을 줄일 것이고 기업들도 투자를 꺼리게 되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이 저해된다”고 설명한다. 경기 침체도 문제지만, 과도한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경제는 적당한 균형점이 중요하다. 미국은 금리를 인상해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돈을 거둬들여 경기 호전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도 상반기 지나면 금리 인상 불가피

미국이 금리를 낮춰 시중에 푼 자금 중 상당액은 그동안 미국 밖으로 빠져나와 세계 각국에 투자됐다. 투자 자본은 미국보다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로 이동했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세계 각국의 주식·채권·부동산·기업 등에 투자된 투자 자본이 더 안정적인 투자처인 미국으로 다시 흘러들 수 있다. 급격한 해외 자본 유출은 신용 경색을 낳고,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킨다.

국제 자금의 급격한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 금리 인상 속도에 맞춰 자국의 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1.5%다. 만약 올해 미국 금리가 꾸준히 올라 한국 금리에 육박한다면 한국에서 해외 자본의 이탈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도 상반기를 거치면서 금리 인상 시점을 조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부터 11개월 연속 0%대로 주저앉았다…정부와 한은은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공식화했다. 한은이 뛰는 물가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추락하는 물가를 떠받치겠다고 선언한 건 50년 설립한 후 처음이다…사상 최대 무역 흑자도 달갑지만은 않다. 수출이 늘어서가 아니라 수입이 더 빨리 줄어 생긴 ‘불황형 흑자’라서다. 한국은 원자재를 사다 중간재로 가공해 수출하는 나라다. 수입 감소는 앞으로 수출도 죽을 쑬 거란 예고편이다. ‘무역 흑자의 역설’이다.”(중앙일보 2015년 12월 21일 ‘위기인 듯 위기 아닌 위기 같은 한국’) 이런 마당에 한국이 금리를 올리면 그나마 살아나던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가계부채는 12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 중 40%가 주택담보대출이다. 낮은 금리에서 사람들은 대출을 늘려 집을 샀다. 이 덕분에 지난해 주택 매매 건수는 주택경기 호황이 절정이었던 2006년의 108만 건을 넘어서 120만 건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금리가 인상되면 빚을 내 주택을 구입했던 사람의 이자 부담이 증가해 제때 빚을 못 갚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저금리에 대출로 집 산 사람들 부담 커져

올해 한국 경제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한 형국이다. 밖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성장 둔화, 유가 급락에 따른 산유국 경제 침체 등이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안으로는 부동산 경기 냉각과 가계부채 문제, 구조개혁의 지연 등이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외 경제예측 기관들이 내놓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4~2.7% 수준이다.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2.9~3.0%)보다 낮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비관론은 시기상조란 주장도 있다. 국제 외환 시장의 흐름이나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고려했을 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단기간에 급격한 자본 유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달 20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무디스(Moody’s)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2’ 단계로 격상했다. 이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21단계 중 세 번째로 높은 단계다. 한국보다 국가신용도가 높은 나라는 미국·독일·캐나다·호주·싱가포르·영국·홍콩 등 7개 나라뿐이다.

그렇다고 자만은 곤란하다. 언론은 “국가신용등급은 단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할 뿐 한국 경제 자체가 튼실하다는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언젠가는 한국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와 기업 이자 부담 증가 등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 자체가 튼튼해져야 한다. “이제는 단기 부양보다는 구조개혁을 통한 중장기 체력 확보, 구조조정을 통한 내실 다지기에 힘써야 한다. 특히 조선·철강 등 경쟁력을 잃어 가는 주력 산업을 대체하고 혁신할 투자·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한 벤처 육성이 필요하다.”(중앙일보 2016년 1월 1일 ‘한국 경제 돌파 전략, 제주를 보라’)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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