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풀어준 반달곰, 손주 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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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지리산에서 방사된 반달가슴곰이 야생 상태에서 3세대를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3일 “지난해 9월 포획된 39번째 곰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어미의 유전자는 기존에 파악된 개체들의 유전자와 다른 형태를 보였다”며 “어미 곰은 기존에 방사된 곰에서 태어난 2세대, 39번째 곰은 손주 세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2004년 첫 방사 뒤 39마리로 늘어
39번째 곰 어미, 야생 2세대 추정

 반달가슴곰은 밀렵 등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멸종 위기종 1급과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됐으며, 공단은 2004년부터 러시아와 북한·중국에서 반달가슴곰을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했다.

 손주 세대일 가능성이 큰 39번째 곰은 지난해 9월 공단이 설치해 놓은 생포 트랩에 걸렸다. 체중 60㎏의 3년생 수컷이었다. 공단 측이 곰을 마취시킨 뒤 트랩에서 꺼내보니 곰의 발과 귀에 개체 번호 등을 담은 표식이나 위치 추적에 쓰이는 전파발신기가 없었다. 공단 측은 유전자 분석을 위해 혈액을 채취하고 자리를 떴다. 마취에서 풀린 곰은 숲으로 돌아갔다.

 공단은 이 곰의 DNA를 2014년 구축한 반달가슴곰 가계도의 모든 유전자형과 대조했다. 지리산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곰 52마리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와 비교한 것이다. 분석 결과 아빠 곰은 공단 측이 러시아에서 들여와 2005년 방사한 수컷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어미 곰의 유전자 정보는 기존 유전자 정보와 일치하지 않았다. 공단이 방사한 곰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단 종복원기술원 김석범 부장은 “어미 곰을 포함해 자연 상태에서 태어난 곰 중 9마리는 아직 유전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는 반달가슴곰의 개체 수가 증가하고 야생성이 높아져 직접 포획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2013년부터 모근·배설물 등을 통한 유전자 분석도 병행하고 있지만 모든 개체의 유전자 파악엔 보다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곰은 만 4~5년이 되면 번식에 참여한다. 39번째 곰이 교미에 나서면 2018년 4세대 곰이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방사한 모든 곰이 야생 상태에서 새끼를 낳고 생존하고 있는 건 아니다. 2014년 6월 반달곰 ‘천황’이가 지리산 벽소령 대피소 앞에 나타나자 공단 측은 이 곰이 자연 적응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포획해 보호·관리 중이다. 지난해 6월엔 농작물 피해를 자주 입히던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비슷한 이유로 공단 측에 의해 포획돼 보호를 받고 있다. 불법으로 쳐놓은 올무에 걸려 목숨을 잃은 곰도 5마리나 된다.

 반달가슴곰은 개보다 후각이 7배나 뛰어나고 조심성도 많아 인기척이 나면 스스로 몸을 피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김 부장은 “반달가슴곰들의 위치를 추적한 결과 정규 탐방로 10m 이내에 접근할 확률은 0.04%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공단 측은 내년엔 설악산·오대산국립공원에서도 반달가슴곰을 시험 방사할 계획이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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