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한국선수들 올시즌 ‘감독 궁합’ 나쁘지 않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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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23면


지난해 한국 야구 팬들에게 가장 화제가 됐던 메이저리그(MLB) 감독은 클린트 허들(59)이다. 강정호(29)가 뛰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강정호의 기용 권한을 둔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야구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추신수(34·텍사스 레인저스)는 제프 배니스터(51) 신임 감독의 플래툰(상대 선발 투수에 따른 기용) 때문에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힘겹게 시즌을 치렀다.


2016년, 눈길을 끄는 지도자는 세 명이다. 박병호(30)와 김현수(28)가 뛸 미네소타 트윈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 지휘봉을 잡고 있는 폴 몰리터(60)와 벅 쇼월터(60), 그리고 류현진(29)의 LA다저스를 새롭게 이끌게 된 데이브 로버츠(44)다. 이들은 누구이고, 세 선수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현역 시절 수퍼스타 출신 몰리터몰리터 감독은 현역 시절 수퍼스타였다.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한 1978년 신인왕 투표 2위에 올랐다. 92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해 93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신인 몰리터는 3년 뒤 고향팀 미네소타로 이적해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21년간 통산 성적은 타율 0.306, 234홈런·1307타점·504도루. 등번호 4번은 밀워키의 영구결번이다.


그는 미네소타 벤치코치와 시애틀 매리너스 타격코치를 거쳐 지난해 11월 미네소타 사령탑에 올랐다. 부임 첫해 그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미네소타는 약체로 꼽혔지만 예상을 뒤엎고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막판까지 다퉜다. 최종 성적은 83승79패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3위. 스포팅뉴스는 몰리터에게 올해의 감독상을 줬다.


몰리터는 선수를 믿고,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송재우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몰리터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인성이 훌륭해 팀메이트들을 잘 챙겼다. 감독이 된 뒤에도 현역 때 모습을 잃지 않아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 말년 지명타자로 활약했던 몰리터는 “박병호가 지명타자 뿐 아니라 1루수로도 30~40경기 정도를 뛰게 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어 “그가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송 위원은 “박병호가 좋은 감독을 만난 것 같다. 몰리터는 ‘믿음의 야구’를 하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고 적응해가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깐깐한 원칙주의자 쇼월터쇼월터 감독은 선수 시절 빅리그에 가지 못한 채 은퇴했지만 지도력만큼은 탁월하다. 뉴욕 양키스(92~95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98~2000), 텍사스 레인저스(03~06), 볼티모어(10~현재)까지 네 팀을 거치면서 17년 동안 1340승 1242패를 기록했다. 1340승은 현역 감독 중 다승 3위다. 특히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다. 80년대부터 몰락한 양키스를 떠맡은지 4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다. 1981년 이후 무려 14년만이었다. 1998년 창단한 애리조나는 그가 떠난 바로 다음 해 우승했다. 약체 볼티모어도 강팀으로 바꿔놓았다. 한국 선수와도 인연이 많다. 애리조나에서는 김병현(37·KIA), 텍사스에서는 박찬호(43·은퇴)와 함께 지냈고, 2014년에는 윤석민(30·KIA)이 볼티모어에 입단했다.


쇼월터는 보수적인 MLB에서도 깐깐하기로 소문난 인물이다. 고교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라커룸이나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들에게 많은 규제를 가한다. 최근에는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예전에는 주축 선수라 해도 단정하지 못한 복장이나 액세서리를 하는 것을 용납치 않았다.


그는 선수의 몸값이나 명성에 의존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에서 온 무명의 투수 김병현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BK’란 애칭도 붙였다. 텍사스 시절에는 2003시즌을 앞두고 5년 6500만달러라는 특급 대우를 받고 이적한 박찬호가 4월까지 6경기에서 1승에 그치자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현수에게는 쇼월터 감독의 성향이 득이 될 전망이다. 연습생(신고선수)으로 입단했던 두산 시절, 그를 중용했던 김경문(현 NC 감독)처럼 실력만 보고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송재우 위원은 “쇼월터와 김현수는 잘 맞을 것 같다. 김현수는 재능에 의존하지 않고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다. 쇼월터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송 위원은 “규율 문제도 MLB 경력이 많은 선수라면 괴롭겠지만 모든 게 처음인 김현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스턴 우승 단초 된 도루 전문 로버츠주일 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츠는 선수 시절 빠른 발로 유명했다. 2004년 보스턴 시절 AL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기록한 ‘더 스틸(the steal)’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4차전 9회 말 대주자로 나와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견제를 뚫고 2루를 훔쳤다. 이어 빌 뮐러의 안타 때 홈을 밟아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를 탄 보스턴은 4연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까지 차지하며 ‘밤비노의 저주(1920년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로 이적시킨 뒤 우승하지 못한 징크스)’를 깨트렸다.


은퇴 뒤 해설자로 일하던 그는 4년간 코치를 지내다 다저스의 새 감독이 됐다. 앤드루 프리드먼 LA 다저스 야구부문 사장은 “감독 인터뷰에서 로버츠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드물게도 선수 출신이지만 세이버매트릭스(야구를 통계학·수학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는 기법)에도 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로버츠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더 많다. 주전과 대주자, 대수비를 오가던 평범한 선수였던 그가 연봉합계 1위인 스타 군단을 맡았기 때문이다. 스타군단의 감독은 클럽하우스를 어떻게 장악하느냐가 리더십의 관건이다. 송 위원은 “현역 시절 스타였던 전임자 돈 매팅리 감독은 투수 운용은 부족했지만 야수진을 고르게 활용해 선수들의 불만을 최적화시켰다. 로버츠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 신뢰를 이끌어내느냐가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감독이 바뀌었지만 류현진의 입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코칭스태프가 대폭 물갈이되는 와중에도 릭 허니컷 투수코치는 잔류했기 때문이다. 허니컷 코치는 3년간 류현진과 호흡을 맞춰 누구보다 류현진을 잘 안다. 류현진은 ‘감독 교체의 영향이 없겠느냐’는 질문에 “다저스에 처음 입단할 때도 적응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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